택시로 출근하고, 택시로 퇴근하는 것이 꿈이었다. 취직 후 가졌던 부푼 소망이었다. (혹시 차가 있다면) 내 차를 가로막고 있는 다른 차 운전석에서 겨우 읽어낸 전화번호로 “이른 시간에 죄송합니다. 차 좀 빼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마음에도 없는 굽신거리는 표정으로 전화하기 싫었다. 그렇게 뺀 차를 타고 나와도 예고 없이 끼어드는 옆 차를 보며 욕하고, 내가 차선을 바꾸는데 양보하지 않는 뒤차를 보며 욕하고, 그렇게 수십 번 분노하며 도착한 지하 주차장에서 자리를 찾아 헤매는 것도 싫었다. 드넓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전철-버스 통근길은 생각만으로도 지치는 여정이었다. 그래서 택시는 소망이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택시에 적힌,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붉은 메시지. '빈 차'.
스물여덟 살부터 서른 살. 3년 동안은 택시로 출퇴근하며 (소박하면서도 정신 나간) 호사를 누리고 살았다. 편도 택시비 6천 원. 왕복 만천 원. (기본요금 2,400원 시절의 이야기. 퇴근길 동선은 우회전이 많아 택시비가 출근길보다 조금 덜 나왔다) 매일 택시를 타는 것은 아니니 한 달 택시비 약 20만 원. 나는 술을 잘 먹지 않으니 술값으로 나가는 돈보다 싸다며 택시 출퇴근을 합리화했다. 왜 택시를 타고 싶었을까.
얼마 전,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들과 전 직장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4명이 모였다) 자리를 파하고 호기롭게 택시를 탔다. 전 직장은 현 직장보다 집에서 훨씬 가깝다. 그래서 탔다. 미터기 속 경주마는 3,800원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아, 합정에 살던 시절이 아니지. 집도 멀어졌는데......'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하며 어림짐작으로 계산해보는 사이 택시는 마포대교 위로 올라섰다. 도로가 제법 밀리면서 택시는 천천히 다리 위를 지나쳤다. 등 뒤로 보이는 IFC와 파크원 빌딩의 불빛, 한강 공원에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 노들섬 너머 보이는 화려한 강남의 빌딩과 아파트, 강변북로에 늘어선 노란색과 빨간색 불빛의 행렬까지. 창밖으로 금요일 밤 서울의 밀도가 다채로운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맞아. 이래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싶었었지.'
택시가 다리를 건너던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마치 내가 주류사회에 속해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주류사회, mainstream, 제도권.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남들 일할 때 같이 일하고 쉴 때 같이 쉴 수 있는 사람? 혹은 자가를 보유한 사람? 벤츠, BMW를 타는 사람? 저마다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마포대교를 건너던 순간 나는 내가 왜 택시를 타고 싶어 했는지, 왜 택시로 출퇴근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나는 속된 인간. (그러나 집 앞에서 치킨 한 마리 값을 택시비로 계산하고 내리며 다시 마음이 공손해졌다.)
다시 얼마 전 주말,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지하 1층 식품관에서 굴비 한 두름과 과일을 포장하고 같은 층에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QR 체크인을 마치고, 아이들을 앉히고, 각각 유튜브를 틀어주고,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겨우 마스크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천천히 주변 손님들을 둘러봤다. 중년의 부부, 4인 가족, 연인 등 여러 형태의 손님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 자격지심 때문일까. 식당에서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중산층’처럼 보였다. 모두들 옷은 깔끔하고, 비만인 사람도 없고, 행동은 급하지 않고 여유로웠다. 온몸에 ‘여유로움’이라는 코팅지를 입힌 것처럼.
배 나온 아저씨는 나뿐이었다. 그럼에도 식당 안에서 나는 또다시 다른 ‘중산층’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맡고 있다고 잠시 착각했다. 내가 먹을 굴비가 아니라 겨우 선물로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에 왔으면서 나는 백화점 식품관에서 굴비를 살 ‘자격’이 있는 사람인 줄로 (아닌 걸 알면서도) 오해하고 말았다. 담당 직원분이 10마리씩 묶인 굴비를 매대에 풀어놓고, 지느러미와 꼬리를 자르고, 두 마리씩 봉투에 담아 전체 묶음 포장을 하고, 다시 보냉팩과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주는 일련의 서비스 과정이 나를 대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백화점 식품관이 너무 좋다. 아, 나는 속된 인간.
시간을 한참 돌려 미취학 아동 시절,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인근 대도시 청주로 ‘도시의 바람’을 쐬러 갔다. 청주에서 학교를 다닌 엄마는 학창 시절의 향수를,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도시의 향기’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대도시의 북적거림과 화려한 브랜드 매장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진로백화점의 에스컬레이터를 가장 좋아했다. 어린 마음에도 백화점이 풍기는 풍요의 냄새가 좋았던가 보다. 고향에서는 어느 건물에 가도 에스컬레이터를 볼 수 없었는데 청주에 가면 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있고 그 속에 들어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나를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다시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데려다주었다. 힘들게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기계의 도움으로 나는 움직였다. 엄마 손을 붙잡고 1층부터 위로 위로 에스컬레이터를 환승하고, 꼭대기부터 다시 아래로 아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특별히 볼일도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아래로 변하는 풍경을 바라봤다.
그러다 지하 1층 식품관으로 내려갔는데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급한 발걸음으로 식품관을 빠져나왔다.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지는 속도였다.
아. 여기는 백화점 식품관. 들어가면 안 되는 곳. 들어가면 큰일 남. 이곳은 금단의 공간.
순간 백화점 식품관은 머릿속에 그렇게 각인됐다. 아마 허영의 싹은 그때 마음속에 심어졌는지도.
나는 지금도 여전히 택시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을 소망한다. 백화점 식품관을 이마트 가듯 방문해 한 아름 장을 보는 ‘내 모습’을 희망한다. 물론 이제는 종종 택시를 탄다. 물론 이제는 종종 백화점 식품관에서도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하지만 그때마다 울리는 휴대폰 속 문자를 보며 이내 다소곳한 자세로 허영의 마음을 고쳐 잡는다. 그러나 곧 다시 나는 택시를 그리워하고, 나는 백화점 식품관을 동경한다. 아, 나는 속된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