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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Jun 01. 2021

쯧. 그릇 줄어드는 소리

근무 시간에 집에 전화를 두 번 하면 일이 별로 없는 날. 한 번 하면 업무 사이에 여유가 있는 날. 전화가 없으면 바쁜 날이다. 대체로 그렇다. 특별히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것은 아니고 애들은 일어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또 아이패드만 갖고 놀고 있는지, 태권도는 다녀왔는지 등을 묻는다. 애들도 제법 커서 이제는 통화에 끼어들어 두서없는 말을 하는데 듣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그날은 집에 전화를 하지 못했다.  

   

정시퇴근을 조금 넘긴 시간,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고 4호선 전철에 올랐다. 평소보다 조금 늦어서일까... 현관문을 열자 아이들이 다른 때보다 더 빠르게 달려와 안겼다. 첫째는 앞으로 안기고 역시나 둘째는 뒤로 돌아 엉덩이부터 안겼다. 옷도 갈아입고 씻어야 하는데 자꾸 다리에 붙어 있길래 왜 안 떨어지냐 했더니 아빠가 너무 좋다고 해줬다. 겨우 아이들을 떨어뜨리고 씻고, 옷을 갈아입고, 밥을 뜨려다가 싱크대를 정리하고, 이따 내다 버릴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통에 담고, 우연히 냉동실을 보니 피자가 있길래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겨우겨우 아이들이 먹던 저녁상 한편에 수저를 들고 앉았다.       


달칵.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한입 먹자마자 큰애가 물컵을 넘어뜨렸다. 밑이 넓은 머그도 아니고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작은 찻잔이었다. 소주잔보다는 크고 과일소주를 마실 때 쓰면 적당하다고 할 만한 크기의 잔이었다. 머그도 많고 아이들용 캐릭터 컵도 있는데 굳이 그 컵에 마시겠다고 하더니 결국 잔을 엎었다. ‘달칵’ 컵이 자빠지는 순간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내는 주방으로 키친타올을 가지러 갔고 나는 화장실 앞에 있던 수건을 가져왔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쯧’하고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짜증을 낸 것. 회사와 개인을 분리하겠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막상 일이 조금 바쁜 날이었다고 집에 와서 짜증을 냈다. 이제 막 바닥에 앉았는데 바로 다시 일어나려니 비만인의 한 사람으로서 짜증이 났다.     


“아빠, 내가 쯧하지 말랬잖아. 아빠 미워. 내가 아빠 화내지 말라고 했는데. 아빠가 쯧하면 내가 아빠 혼낸다고 했잖아”      


내 짜증에 큰애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머쓱해지고, 애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말을 잘해서 감탄하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자주 짜증을 냈던가 반성을 하고, 방금 까지 아빠가 좋다고 했는데 금방 저렇게 미워하다니 살짝 슬퍼졌다.     


아내는 반면 키친타월을 가져다 흘린 물을 닦으며 아이들 차분하게 대했다. 닦았으니 괜찮다고. 다시 물을 따라주겠다고. 아내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 둘과 종일 밀착 생활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지금껏 애들한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요즘이야 아이들 근력이 좋아지면서 집에서 소소하게 사고를 치곤 해서 아내가 종종 화를 낼 때도 있지만 남편&아빠 입장에서 바라볼 때 놀랍도록 애들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부럽다. 부끄럽다. 그렇다고 특별히 비결이 있는지 묻지는 못했다.     


다시 출근길. 이번에는 외근이라 차를 운전해서 가는 길이다. 13km 거리를 한 시간 정도 운전하면서 ‘쯧’ 소리를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신호 대기가 끝나고 녹색 불이 켜져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바라보며, 가뜩이나 밀리는데 우회전 차로에서 내 앞으로 얌체같이 끼어들기를 하는 옆 차에게, 간선도로 진입로에서 느긋하게 시속 30km로 운전하며 긴 꼬리 행렬을 만드는 앞앞차에게 나는 계속 쯧쯧거리고 화를 내고 가속 페달을 밝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우회전을 했다.      


혀를 차며 화를 낸다고 바뀌는 일도 없는데 나는 왜 이리 짜증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신호에서 앞차가 바로 출발하더라도, 밀리는 길에서 누군가 내 앞으로 끼어들지 않더라도, 앞앞차가 진입로를 시속 80km로 빠르게 가더라도 한 시간이 겨우 58분 정도로 줄어들 뿐인데. 출근길에 10분 더 일찍 출발하고, 아이가 물을 엎지르면 닦고 다시 따라주면 될 일인데.     


중앙일보에 게재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의 인터뷰 기사가 화제가 됐었다. 예전 업무로 자주 뵀던 어느 노교수님께서도 몇 번 얘기를 하셨던 분이라 조금 더 기사에 관심이 갔다. 교수님은 행복에 대해 얘기하면서 행복해질 수 없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 두 번째 부류는 이기주의자라고 했다.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각 경제주체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인다고 배웠는데... 기사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얘기했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격을 못 가집니다. 인격이 뭔가요. 그건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입니다.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겁니다.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릇. 그놈의 ‘그릇’.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지만 여전히 그릇은 형편없다. 동갑 아내와 비교하면 샐러드볼과 간장종지의 차이 정도일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마음에도 여유가 있어야 그릇도 커질 텐데 여즉 멀었다.


내일 출근길에는 ‘쯧’ 소리를 몇 번이나 하는지 세어보자. 그리고 줄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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