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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기군 May 15. 2021

NIKE가 뭐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묻지마 패밀리’를. 2002년. 무려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다. ‘묻지마 패밀리’는 장진 감독이 프로듀싱한 옴니버스 영화였다. 영화 속 ‘내 나이키’라는 단편에서 배우 류덕환은 나이키 신발 한 켤레를 얻는 것이 꿈인 중학생이었다. 개인택시를 장만하고 싶은 아빠, 그리고 공부로, 주먹으로 학교 일등을 노리는 큰형과 작은형, 또 하루빨리 죽는 게 소원인 할머니 사이에서 막내아들(명진)은 시종일관 나이키를 꿈꿨다. 명진이는 꿈을 이뤘을까. 그깟 나이키가 뭐라고.


음쓰를 버리려고 현관에 나갔는데 슬리퍼가 보이지 않았다. 신발장 문을 열었다. 신지도 않는 운동화가 가득하다. 주로 나이키, 아디다스, 그리고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구입한 자사 브랜드 운동화들이다. 운동화는 대체로 주말에만 신는데 신발장에는 구두보다 운동화가 더 많다. 일주일에 이틀, 한 달이면 많아야 8일에서 열흘 남짓 운동화를 신을 텐데 신발장에 자리하고 있는 운동화는 열 켤레가 넘는 듯 보인다. 하루에 한 켤레씩 번갈아 신어도 한 달 동안 한 번도 신지 못할 신발이 생기는 상황이 됐다. 그마저도 발이 편하다는 이유로 주로 아식스 젤카야노만 신다 보니 신발장에는 내가 이런 신발도 샀던가 싶은 녀석도 있다.


사실 운동화는 신발장에서 넘쳐흘렀다. 운동가방에는 리프팅을 위한 리복 크로스핏 나노와 러닝을 위한 또 다른 아식스 젤카야노가 담겨 있고, 차 트렁크에는 구입한 지 오래됐지만 그렇다고 별로 안 신어서 버리기 아까운 나이키, 아디다스의 이름 모를 운동화가 하나씩 들어있다. 그런데도 주말 산책으로 아웃렛에 가는 날에는 빚쟁이마냥 나이키 매장부터 들어가 슬쩍 세일 상품을 들여다본다. 효율적인 방문을 위해 주차도 나이키 매장이 있는 건물에 한다. 세일은 그때그때 다르다. 70% 할인을 하는 날도 있고, 50% 할인을 하는 날도 있고, 마음에 드는데 사이즈가 없는 날도 있고, 세일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도 있다. 주말에 가면 10% 더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매장을 한 바퀴 돌며 스캔을 하고 괜찮은 신발이 5만 원 이하라면 덥석 사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신발을 사며 잠깐 행복하고 돌아오면 한참을 신지 못하니 오래 슬퍼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읍소재지 고향에서 지낸 중학교 시절. 아래층 이웃이 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셨다. 브랜드 대리점이 아니라 모든 신발을 가져다 파는 상점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신발은 그 가게에서 샀다. 기억하나 카이 운동화... 나도 리복 벌집 운동화를 신고 싶었지만 동네에 매장도 없고, 사려면 도시까지 나가야 하고, 그렇다고 우리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랫집 가게에서 짝퉁 나이키를 사서 신고 다녔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몰려다니던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브랜드가 없거나, 짝퉁이거나, 저가 브랜드 거나.


고등학교를 옆 도시에 있는 곳으로 다니게 됐다. 실내화가 슬리퍼였다. 통일된 색상이나 디자인 기준이 없는 그야말로 자율의 영역. 슬리퍼는 수업시간에도 신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신고, 기숙사에 올라가서도 신고, 씻으러 갈 때도 신는 필수템이었다. 그런데, 나만 슬리퍼가 달랐다. 누구는 하얀 선 세 개가, 누구는 점프하는 고양잇과 동물이, 누구는 부메랑같이 생긴 로고가 새겨진 슬리퍼를 신었다. 반면 내 슬리퍼는 형태와 기능에 충실한 슬리퍼였다. 로고가 없어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슬리퍼.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는 어땠을까. 주말에는 운동화를 신었다. 외출이 가능한 주말에는 친구들과 다 함께 밖으로 나갔다. 피씨방을 가거나 싸돌아다니거나, 학교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나는 발끝이 신경 쓰였다. 슬리퍼는 학교 안에서 신지만 운동화는 밖에서 신으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신경 쓰였다. 친구들이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내가 찢어지게 가난한 것도 아니었지만 막연히 친구들보다 내가 한 칸 아래 계단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주말에는 학교 근처 시장에서 (브랜드가 아닌) 운동화를 샀는데 같이 갔던 친구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는 20년도 지난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다.


용돈을 모았다. 한 달에 부모님께 40만 원을 받아서 기숙사비 17만 원을 내고, 문제집 10만 원 정도를 사고, 회비 내고 외식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모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다시 돌아온 주말, 학교 앞 스프리스 매장에 가서 네이비 색의 캔버스 스니커즈 한 켤레를 샀다. 슬리퍼도 샀다. 신발끈도 샀다. 알록달록 신발끈으로 모양내는 게 유행이었으니까 나도 하고 싶었다. 새로 산 신발끈으로 스니커즈 구멍을 따라 이리저리 엇갈렸다. 시장표 신발은 버리고 스프리스로 갈아 신었다. 이제 나는 발끝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을까.


대학생이 되고 학교 근처에서 하숙 생활을 시작했다. 스무 개 가까운 방으로 이뤄진 하숙집의 현관은 아수라장이었다. 방마다 몇 켤레씩 신발이 나와 있는 것 같았다. 신발들이 두 겹, 세 겹 레이어 되어 외출이라도 하려면 이리저리 내 신발을 찾아야 나갈 수 있었다. 혹 친구들까지 놀러 오면 신발장은 더욱 개판이 됐다. 한 번에 찾아 신을 수 있는 슬리퍼가 필요했다. 미즈노에서 새빨간 슬리퍼를 사 왔다. 발등은 하얗고 인솔은 빨간 슬리퍼. 덕분에 개판 오 분 전인 현관에서 항상 내 슬리퍼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루는 주인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나를 불러 부탁을 하셨다. 당시 중3 또는 고1 정도였던 주인집 아들이 수학여행을 가는데 내 슬리퍼를 며칠 빌려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다시 여쭸다. 주인아주머니는 무척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내 고교 시절이 기억났다. 바로 그러시라고 말씀드렸다. 슬리퍼 며칠 없다고 불편한 것도 아니었으니. 주인집 아들에 감정이입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집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할만한 나름의 사정이 있었지만 이 글에서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아주머니는 슬리퍼를 빌려가지 않으셨다. 기왕에 가는 아들의 수학여행, 운동화와 슬리퍼를 하나씩 새로 장만해주신 것은 아닐까.


모처럼 일찍 퇴근한 하루. 둘째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아이가 짐을 챙겨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현관 신발장을 둘러봤다. 캐릭터 신발, 걸을 때마다 불빛이 나는 신발, 공주님 구두 등 아이들의 취향별로 신발이 가득했다. 나는 조용히 아이 이름이 적힌 자리에서 뉴발란스 운동화를 꺼내 아이가 신기 좋게 현관에 내려놓았다. 신발 가장자리에 알파벳 N이 크게 박혀있다. (대단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신발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면 아이들 신발은 할인도 별로 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부모 신발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그래도 사준다. 아이들은 몰라도 나를 위해서.


현관 신발장 문을 다시 열었다. 오래된 운동화, 신발장에 두어도 다시 신지 않을 것 같은 운동화는 버려야지 마음먹고 문을 열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결국 자사 브랜드 운동화 한 켤레만 꺼내고 문을 닫았다. 다른 운동화는 다시 신발장에 그대로 두었다. 그깟 나이키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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