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영화 스크린은 네모 모양이다. 가로가 세로보다 긴 직사각형이다. 이 네모를 프레임이라고 부른다. 방향 없이 흘러가는 일상 위에 프레임을 씌우면 스토리가 생기고 프레임 너머로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프레임은 새로운 창문이 된다.
대부분 주방에는 개수대 위로 작은 창문이 있다. 우리 집 주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특별한 것이 없다. 마주한 이웃 아파트 단지의 모습, 그 앞의 작은 놀이터, 그 앞의 주택가, 대한민국의 모든 풍경에 반드시 포함되는 교회 십자가도 하나 보인다. 설거지를 하다 잠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 특별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하늘, 도로에 차를 잠시 세우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담배를 피우며 누군가와 전화로 싸우는 사람, 부지런히 음식을 싣고 나르는 오토바이들.
엄마는 그날 창밖으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십수 년 전인가... 대학교를 휴학하고 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영업일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저녁을 드시느라 집에는 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저녁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갑자기 서럽게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엄마가 우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외조부모도 건강하셔서 가족의 병마로 울 일도 없었고, 그게 아니라면 몇 년에 한 번씩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우며 억울한 심정이 밖으로 흐르는 눈물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엄마는 마치 내가 모르던 사람처럼 울었다. 손은 여전히 싱크대 안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지만 고개는 눈물을 넘기느라 위로 젖혀있었다. 나는 두 손, 두 발, 두 눈 모두 갈 곳을 잃고 엄마와 TV와 집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그날 저녁이 있기 얼마 전, 엄마는 어린 시절 동창을 만나기 위해 인근 도시 대학병원에 다녀오셨다. 병원에 다녀오기 전후로 누군가와 통화를 했고, 통화에 따르면 아마도 그 친구분은 암이었던 것 같다. 짐작하건대 치료가 늦은 시점이 아니었을까. 엄마도 그걸 느끼지 않았을까.
일일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가정주부처럼 엄마는 결혼 이후 당신의 주변을 둘러보는 삶을 살지 못했다. 매달 월급날이 다가오면 쌀부터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집에서 어린 아들 둘을 키우고, 하루 세끼 시부모의 밥을 짓고, 새벽마다 일어나 연탄을 갈아 옮기는 인생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어쩌다 내 손을 잡고 엄마가 학교를 다니던 옆 도시의 본정통에 나간 날엔 적잖이 신난 목소리로 내게 여기저기 설명도 해주고 유명한 곳을 보여주었다. 쌀 걱정은 하지 않을 정도로 살림이 밝아진 후에는 다시 몇 년간 자리에 누운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았다. 당연히 친구를 만나볼 생각은 하지 못했을 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엄마가 그 친구분을 만나고 오셨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친구분은 돌아가셨다. 부고를 접한 엄마는 넘치는 눈물로 싱크대를 적셨다. 설거지를 멈추지 않으며... 겨우 눈물을 멈춘 엄마는 잠시 주방 창밖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엄마가 바라본 바깥 모습은 어땠을까. 그 모습을 기억할까. 아니면 그 친구분과의 추억이 생각났을까. 또는 더 일찍 만나지 못해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을까.
며칠 전 직장 동료의 부친상으로 문상을 다녀왔다. 그래도 편하게 가셨다며 상주는 짐짓 웃는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빈소가 어렵다. 직장을 10년이나 다니며 적잖이 빈소를 다녔지만 아직도 어떻게 인사를 할지, ‘안녕하세요’라고 실수는 하지 않을지, 상주 앞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으면 좋을지 당황할 때가 많다. 가만히 자리에 앉은 상태로도 손발은 좀처럼 갈 곳을 찾지 못한다.
엄마가 울던 그날 저녁, 나는 거실에 앉아있었다. 우는 엄마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무 살이 넘은 나는 다시 젖병도 떼지 못한 어린아이로 돌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우는 엄마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물론 엄마의 설거지를 돕는 것은 아니다.) 쌓인 그릇을 대충 물로 부셔서 식기세척기에 하나씩 넣다가 주방 창밖을 쳐다봤고, 문득 엄마가 울던 그때가 떠올랐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나는 여전히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겠지만 작게라도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 아쉬움은 남기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엄마가 붙잡고 있던 설거지를 대신 마무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