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만 있다면

by 김몰라

지우개로 내 삶의 일부를 지울 수 있다면?


아빠의 직업으로 인해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전학을 했다.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들이 많지 않았고 내 생각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반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간단히 소개해주고 맨 뒤 빈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 옆에는 짧은 커트 머리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가진 친구가 앉아 있었다. “안녕? 내 이름은 H야.” 먼저 말을 걸어준 그녀가 고마웠다. “응.” 짧은 단어로 대답했다.

H는 매일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학교 구경도 친절히 해줬고 내가 서툴 땐 언제나 도와줬다. 종종 편지를 써줬고 집에도 초대해줬다. 고마운 친구였다. 우리 사이는 점점 가까워졌다.


“네가 전학 와서 모르나 본데, H 조심해. 쟤 따야. 너도 그러다 같이 따 당한다.”


이렇게 친절하고 배려 깊은 이 친구가 왜 따돌림을 받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준에서는 착한 친구였다. 나에게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항상 미소를 짓는 그 누구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한테는 그랬다.

그런데도 나도 같이 따돌림당할까 봐 두려웠다. 이제 전학 와서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H와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H는 눈치를 챘을까? 나의 책상 서랍 안에 늘 편지를 넣어 놨다. 읽지 않았다.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

3학년이 되었다. 각자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변명도 없이 H와의 인연을 끝냈다. ‘따돌림’ 관련 기사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H가 생각난다. H는 여전히 상처가 되어 나를 미워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상처. 내가 왜 그랬을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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