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릴 수 있지

by 김몰라

결혼 전, 주례 선생님과 만났다. 주례 선생님께서 앞으로 같이 살면서 함께 지킬 약속 10가지, 상대방을 위한 약속 10가지를 작성해서 포토 테이블 위에 함께 놓으라고 하셨다. 그날 본인은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남은 시간은 신랑∙신부가 하객 앞에서 마음을 다지는 것으로 진행하자고 하셨다. 작성하는 것이 일이 되겠지만 일방적인 말씀보다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약속을 작성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꼭 지킬 수 있는 약속이면서도 의미 있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상대방에게 바라는 점을 중심으로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해주고 싶었던 일들에 대해 휴대전화 메모장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그중 남편과 합의해서 추린 후 심플한 액자에 출력해서 넣었다.

결혼 당일 우리는 하객 앞에서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친구 남편과 비교하지 않겠습니다.” 하객 중 한 분이 환호를 외치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식장은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남들보다 수입이 적다고 구박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옳소.”라고 화답했다. 그 짧은 순간에 생각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남들과 비교하는 말은 누구나 싫어하는구나.’

더 굳게 다짐했다. 옆집 남자를 내 남편의 비교 대상으로 삼지 말고 언젠가는 태어날 아이와 엄친아하고는 절대 비교하지 말아야지. 내가 선택한 사람과 우리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만 바라보고 많이 사랑해줘야지.

현재, 결혼 9년 차다. 그 약속을 100%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했어도 지키려고 노력은 했다. 특히, 남편과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바라보지 않았고 딸 또한 그녀의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남자아이만큼이나 에너지가 넘치는 우리 집 아이는 놀기 대회에 나가면 전국 1등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놀거리를 찾는다. 가만히 쉬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 나의 체력적 한계로 ‘시체 놀이’를 제안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는 생각에 남들이 학습지를 시켜도 학원을 보내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한글에 서툴러도 더하기 빼기를 못 해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만화책일지라도 책만 손에서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

“어머니 수학 시간에 꿀꿀이가 두 자릿수의 덧셈을 어려워하는 듯하여 문자 드립니다. 집에서 한번 확인 부탁드려요. 어쩌고저쩌고. ~~”

담담한 척 답장을 보냈다. 실은 그렇지 않았다. “엄마, 선생님이 이거 엄마 보여주래.” 말하며 수학 익힘 교과서와 종이 한 장 건네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동공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마음과 머리는 검게 물들어 갔다. 한숨이 나왔다.

지인들에게 물었다. 다들 진작 가르쳤어야 했다고 나를 꾸짖었다. 선생님 연락 받을 정도면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 꿀꿀이가 필요하면 이야기 하겠지. 기다려보자.” 의외의 반응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진정하려 노력했지만 잠까지 설쳤고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음 날, 같은 반 친구 엄마들에게 아이들의 수준을 물었다. 꿀꿀이만 진짜 놀기만 했다. “아직 1학년인데 놀아야죠.” 그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몰랐다. 내 아이만 항상 늦었고 매번 틀렸던 것이다. 아이를 위해 휴직을 해놓고서 아이가 지금 어떤 수준인지 전혀 몰랐다. 비슷한 또래아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야 알았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와는 비교하기 싫었는데 비교되기 시작했다.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혹시나 자존감은 낮아지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고,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대화를 할수록 내 말 속에 숨겨진 의도가 아이에게 들킨 듯하다. “엄마. 나랑 친구는 다른 사람이야.” 대화의 기술이 부족했다. 내가 상처를 줬다. 바로 사과를 하고 대화를 끝냈다.

‘괜찮다. 꿀꿀이만의 속도가 있다. 지금 연산이 부족하다고 이 아이의 인생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늦지 않았다.’ 속으로 반복해서 외쳤다. 그리고 일주일 뒤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께서 수학 익힘 보내주셔서 확인하고 꿀꿀이와 함께 해보려 했는데 다 안다고 조금 거부하더라고요. .... 조금 느릴 수 있지만 꿀꿀이 속도에 맞춰서 집에서도 신경 쓸게요. 선생님께서도 꿀꿀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릴 수 있지만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어쩌고저쩌고~~.”

다행스럽게도 선생님께서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고 이 시간이 끝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다행이다.

나 또한 엄마의 비교가 싫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상황에 의해 흔들렸다. 반 박자 쉬었다가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어야 하는데 급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리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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