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졌어도 나

by 김몰라
12일차 묘사 사진.JPG


베이지 바탕색에 그레이와 브라운 색상의 점들이 모인 테라조 타일 위 두 발. 짙은 그레이 양말을 신은 발이 미니언즈 세 마리가 있는 하늘색 슬리퍼 안에 들어가 있다. 이 두 발은 타일과 타일이 만나는 매지를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놓여 있다. 바이올렛 벨벳 재질의 트레이닝복의 다리 주인은 누구일까.

이 사진을 보니 고등학교 시절 실내화로 신던 삼선슬리퍼가 생각난다. 흰 양말에 삼선 슬리퍼. 그리고 초록색 체육복 위에 교복 치마. 자칫 잘못하면 불량스러운 패션으로 보일지 모른다. 선생님들께서 긴 막대기로 정수리를 톡톡 치기도 했지만 그 패션은 포기할 수 없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교복치마를 움켜쥐고 매점까지 달리는 스피드가 필요했고, 잠시 긴장된 몸을 풀기 위해 쩍벌녀가 되기도 해야 했다. 영화에서의 청순한 여고생의 모습을 한 학생은 적어도 우리 반에는 없었다.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단정한 모습으로 학교에 다니려나? 아니, 예전과 똑같겠지. 변한거 하나 없이 어떻게 하면 머리를 조금이라도 기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교복치마는 돌돌 말아 최대한 짧게 입고, 학생화 티가 나지 않는 검정색 구두를 찾아다닐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내가 깻잎머리를 하고 타이트한 재킷에 짧은 치마를 입은 모습을 잠시 떠올려봤다. 나이 마흔이 넘은 나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나의 학창시절 때 그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는 거슬렸을지 몰라도 여고생만이 누릴 수 있었던 소심한 일탈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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