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번호. 예감은 정확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OOOO HR기획팀 누구입니다. 2월 22일 휴직이 종료되는데 복직하실 건가요?”
“안녕하세요. 아, 네. 복직. 해야죠. 그런데 휴직 연장은 힘들죠?”
“네. 육아로 인한 휴직은 다 쓰셨어요.”
“네, 알겠습니다."
“인사 발령 때문에 그런데 내일까지 복직신청서 작성 가능할까요?"
“네, 그럴게요.”
사실, 작년 12월부터 휴직종료일 안내 알림톡이 주기적으로 왔다. 무시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인데 현실적으로 맞는 선택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출 이자율은 올라갔고, 다른 모든 물가도 하나둘 오르는 이 시점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를 거절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일단 복직신청서를 제출했고 아이에게 말했다.
"꿀꿀아, 엄마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복직신청서 제출하라고."
"복직이 뭐야?"
"아, 복직은 엄마가 다시 회사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을 말해. 엄마가 꿀꿀이 입학해서 작년에 쉬었잖아. 이제 그 쉴 수 있는 기간이 끝나서 다시 출근해야 한다고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
"응? 거짓말하지 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나 놀리는 거냐며 발버둥 치며 우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짠했다. '엄마 밉다고 투정 부리면서도 속으로는 엄마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았구나. 고마워.' 마음이 흔들렸다. 14년 차에 접어드는 이곳과의 인연을 쉽게 끊어내기 어려우면서도 휴직 전에 힘들었던 1년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나 홀로 사막 위에 떨어진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책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현재 내 생활이 싫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면 하루가 끝나는 그런 생활. 남들이 보면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팔자 좋은 생활 한다고 욕할지라도 잠시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사실, 현실을 생각하면 불안하다. 결혼 전에도 결혼 이후에도 남편의 수입에 대해 묻지 않았고 지금도 모른다. 휴직기간 동안 매월 말일 남편의 이름이 찍힌 내 통장의 생활비로 충분했다. 이제는 알아야겠다.
"오빠, 나 회사 진짜로 그만둬도 돼? 그래도 우리 생활이 괜찮은 거야?"
"그냥 작년처럼 사는 거지 뭐."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좋았다. 작년처럼만 살아도 모자랄 것이 없다. 속마음을 나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남편이기에 그의 2022년은 어땠는지 모른다. 그래도 나랑 꿀꿀이는 꽤 괜찮은 2022년을 보냈다.
"그럼 나 진짜로 퇴직한다!"
기분 좋게 남편에게 말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남편이 안쓰럽지만 잠깐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회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복직신청서 승인 완료까지 되었지만 퇴사를 하고 싶다고 전했고, 길고 긴 L사와의 인연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남편도 지인들도 오랜 시간 다닌 회사를 떠나게 되어서 마음이 별로 좋지 않겠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 마음속 갈등이 해결되었고 앞으로 나는 다른 길을 찾아 떠나면 되니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탁상용 말씀 달력에 알록달록한 풍선 여러 개와 함께 있는 글귀가 나를 설레게 만든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손바닥만 한 종이 속에 그려진 풍선처럼 나 또한 훨훨 날아가리.
#글로성장연구소 #별별챌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