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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Jan 08. 2024

엄마, 웃어봐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송 팀장의 메시지.

 “아란 씨, 아란 씨는 참 차가워 보여. 미소만 살짝 지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차 한 잔 전할 때 웃으면 얼마나 좋아. 그래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어요.”

 뜬금없는 메시지에 내 눈은 커졌다. 모니터 화면에 띄워진 창을 한참 바라봤다. ‘이건 무슨 의미지? 오늘 회의 시간에 내가 썩은 표정으로 차를 전달했나? 아니, 쟁반 위에 있는 종이컵이 서른 잔이 넘는데 그걸 웃으며 전해주지 않았다고 이딴 소리를 하는 건가? 이 사람 뭐야?’

 회사에 입사한 지 3~4개월 지났을 무렵이었다. 건설사를 비롯하여 각종 계열사 담당자가 두 달에 한 번 모여 회의가 있는 날이면 늘 긴장했다. 종이컵에 녹차 티백을 넣고 너무 뜨겁지 않게 우려내 전달해야 했다. 서른 잔이나…. 내가 지나갈 틈도 없이 빽빽이 채워진 그 공간에서 차를 한 잔 한 잔 건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각자 들고 들어가면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들고 갔으니 웃을 일은 없었다. 그 표정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나도 그의 메시지가 거슬렸다. 무시했다. ‘내가 웃든 말든 신경 꺼주실래요?’


 나도 알고 있었다. 평소 내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는 것을.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상태로 멍하니,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쓸데없는 그 말 한마디에 내 감정을 소모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냥 흘려보냈다. 굳이 이유 없이 헤헤거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도 좋다는 남자가 생겨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던 딸이 불렀다.

 “엄마. 엄마.”

 “왜.”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낮은 목소리의 건조한 말투로 물으며 화장실로 갔다. 

 

“거울 봐봐. 나처럼 웃어봐.”


 나와는 달리, 아이는 해맑았다. 눈웃음과 함께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따라 해보라는 아이의 얼굴 옆에 아무 표정 없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를 따라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 그렇게 웃으니까 예쁘다!”


 치약으로 가득 찬 입 안에 있던 거품을 튀기며 호들갑 떠는 아이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둘이 시원하게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10여 년 전, 미소만 살짝 지어도 좋겠다는 송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웃으면서 찻잔을 건네면 좋겠다고 한 그 말이 꼭 날 마담으로 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고, 그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그랬던 그의 말이 1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부엌 앞에 서서 음식 재료를 도마 위에 놓고 칼질하고, 시간이 되면 남편과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그들이 집을 떠나고 나면 아무도 없는 그 텅 빈 곳이 주는 자유가 좋으면서도 허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 삶의 터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맥없이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무료했다. 재미없고 지루했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런 나에게 그도 내 딸도 웃으라고 했다. 

 이제는 내 삶이 아이 중심으로 쳇바퀴 돌 듯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아 늘 구시렁거렸고, 투덜거렸다. 답답하고 분한 마음 때문에 가뜩이나 딱딱했던 표정이 더 무섭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에서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던 그때를 떠올리면 절로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좁은 화장실 안을 가득 메우던 온화하고 따뜻한 그 노란 불빛처럼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늘 똑같은 삶과 육아로 지쳐 차갑게 얼어버린 내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종종 만화책을 통해 배운 말장난으로 엄마를 웃기려 애쓰는 꿀꿀이의 노력에 난 웃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7살 꿀꿀이는 “엄마, 웃으라고 장난치는 건데 좀 웃어줘.” 하며 오늘도 나에게 장난을 건다. 꿀꿀이도 그날의 뭉클함을 또 느끼고 싶은 걸까. 나도 또 느끼고 싶다. 나도 진짜로 웃고 싶다. 어떻게 해야 그날처럼 진짜로 웃을 수 있을까. 

 “꿀꿀아, 엄마가 아직 잘 모르겠어.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날처럼 엄마도 웃어볼게! 곧 너의 그 노력에 응답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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