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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Jan 10. 2024

왜 그런 말을 했어요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말

 “어느 계열사에 가고 싶니?” 

 언제부턴가 위태로웠다. 예상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권고사직과 2차에 걸친 희망퇴직 신청을 통해 목표 인원이 정리된 후 최소인원만 남기고 다른 인원들은 타 계열사로 이동하는 절차를 밟았다.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따라 계열사 이동이 하나둘 확정되었다. 내가 소속되었던 디자인팀은 마지막까지 결정이 늦어졌다. 각 계열사에 이미 디자인팀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우리를 받아줄 의향이 없었다. 

 팀장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업을 택할 것인가. 또다시 그저 월급만 꼬박꼬박 받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견뎌낼 것인가. 직장생활 11년 차에 다시 시작한 디자인 업무, 좋았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수 덕분에 자신감도 되찾고 있었다.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S 계열사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S 계열사의 고지식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내가 겪을 일이 눈에 뻔했기에 후자를 택했다.

 “1 지망은 C 계열사, 2 지망 P 계열사로 하겠습니다.” 

 팀원들 또한 각자의 소신으로 원하는 방향을 답했다. 우리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팀장님이 원하는 답은 따로 있었다. 팀원들을 회의실에 불러 모으더니 짜증 섞인 말투로 설교를 시작했다. 그리고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답을 한 거냐고.

 그때 우리는 모두 신중했다. 그 누구도 고민 없이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각자의 선택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팀장님은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가 다 같이 S 계열사를 택해야 지금까지 했던 일을 이어서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팀원들은 그런 팀장님의 설득력 없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2021년 2월. 날이 점점 풀리면서 겨울과 헤어져야 할 때 내 마음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팀장님 덕분인지 팀장님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모든 팀원이 다 함께 S 계열사로 이동했다. 최선이었지만 최악이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떠날 용기가 없었기에 흘러가는 물의 흐름에 내 몸을 맡겨야만 했다.

 눈을 떠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그 시간까지 긴장했고, 그 긴장감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기획사와 협업하면서 일하던 방식에서 이제는 내가 직접 계획하고 그려야 했다. 가장 큰 문제였다. 대학 졸업 이후로 포토샵도 일러스트도 다룰 일이 없었다. 설계사를 떠난 이후로 캐드 프로그램만 간단히 다루면 되었다. 그랬던 내가 10여 년 만에 다시 무언가를 기획하고 머릿속에 있는 디자인을 화면으로 그려내야 했다. 부담감이 컸고 나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힘들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고 책임이 말했다.


 “아란. 내가 다 이야기해 놨어. 김대리는 디자인 업무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되었고 툴 다루기는 어렵다고. 그래도 다른 일은 잘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 말은 나에게 독이 될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독이었다. 굳이 전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나를 돕겠다고 걱정을 덜어주겠다고 전한 그 말은 나를 궁지로 몰았다.


 퇴근길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던 정 책임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상무님이 김대리에 대해 걱정이 많으신 것 같던데. 상무님이 조만간 김대리 찾으실 거야.”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모니터 화면 중앙에 쪽지 창이 떴다.

 “재택인가요?”

 “아닙니다. 출근했습니다.”

 “내 방으로 오세요.”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들고 볼펜을 챙겨 임원실에 들어갔다. 우리의 대화는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로 시작되었다. 그 이후 학사 학위에 관한 질문부터 졸업 이후 내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물으셨고, 난 아침부터 나의 과거 10년을 순차적으로 읊었다.

 “어쨌든 디자인 전공했다고 하니까 일단 해봐. 아니면 인테리어팀으로 옮겨 줄까?” 

 답하지 못했다. 어떠한 선택이 나에게 득이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직 팀원들과도 어색하고, 지금 해야 할 일도 헤매고 있는 이 상황에서 갑자기 다른 팀으로 옮겨 주냐는 그 질문은 나를 쥐구멍에 숨고 싶게 했다.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직원이라는 판단이 들었으면 이런 대화가 필요했을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 잘 적응하고 상무님의 걱정을 덜어낼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

 언짢은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집중하기 어려웠다. 상무님께서 책상 위에 있는 A3 용지에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과거를 그래프까지 그려가며 꼼꼼하게 메모하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강 팀장님이 메시지를 보냈다.

 “퇴근 후 차 한잔할까요?”

 ‘이 사람은 또 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예상되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 자리에 나갔다.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상무님이 나란 사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셔 놓았다.


 고 책임의 쓸데없는 그 말 한마디는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나에 대한 첫인상을 아주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첫인상은 좋든 나쁘든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랜 기간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눈길을 의식하게 되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벼랑 끝으로 몰아내게 되었다. 이 회사에서 내가 설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매일 새벽 2~3시만 되면 잠에서 깨어났다. 침실에서 조용히 나와 숨죽여 울었다.

 나도 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했다. 그냥 생각 없이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강의 신청과 동시에 포토샵과 일러스트 책도 주문했고, 매일 출퇴근길에 강의를 들으면서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는 중이었다. 주말에는 애를 재우고 남편을 옆에 앉혀두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며 내가 살아갈 길을 닦기 위해 계획했고 행동에 옮기는 중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물 수 없었기에 나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꼭 그녀의 탓 같았다. 그냥 둬도 내가 알아서 잘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오지랖으로 남들의 눈치를 살피게 됐고, 퇴근하고 집에만 돌아오면 맥없이 쓰러져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와 엄마가 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왜 그런 말을 했어요?”

 

 따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남편과 딸 몰래 조용히 가슴을 내리치며 울기만 했다.


 그때는 그랬다. 남 탓하며 그것을 핑곗거리 삼아 내 위치를 부정하고 싶었다. 나를 돕는다고 했다는 그녀의 말이 진심이었는지에 대한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매일 밤 울었고 그녀를 탓했다. 그러나 결국은 나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내 선택임을. 그때 그 일을 내가 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았더라면 1년 동안 흘렸던 눈물의 양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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