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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몰라 Jan 12. 2024

엄마의 구멍 난 팬티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

 자녀를 위해 희생하느라 본인의 삶에는 소홀했던 사람. 우리 엄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자녀들의 교육에는 남들 못지않은 열의로 투자를 아끼지 않으셨다. 너희에게 크게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배움에는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했다. 덕분에 우리는 수영선수로, 육상선수로, 피겨스케이트 선수로 잠시나마 활동할 수 있었고 피아노도 배우고 미술학원도 다닐 수 있었다. 우리 집 책장은 전집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음대라도 보내야겠다는 엄마의 의지로 몇 년간 개인지도를 받았다. 동생들은 어학연수도 다녀왔으니 “우리 집에 돈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들은 “그래도 여유가 있었으니 해주신 거지.”라고 말하지만, 직업군인이었던 아빠의 월급으로는 힘들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휴일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방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빨래가 산더미였다. 다 된 빨래를 널었다. 겉옷, 속옷, 수건 분리해서 빨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빨래 더미 속 걸레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에 거슬렸다. 가까이 다가가 들춰보니 걸레가 아닌 엄마의 팬티였다.


 “엄마! 이거 뭐야? 버린다!”

 “왜 버려? 멀쩡한데. 그냥 둬.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해.”

 “아니. 다 찢어졌잖아. 새로 사 입어.”

 “너나 나중에 예쁜 팬티 입고 살아.”


 충격이었다. 집안 살림은 엄마 몫이었고, 엄마 팬티를 유심히 지켜볼 일도 없었다. 날 좋은 휴일 엄마를 돕겠다고 널다가 발견한 그 팬티 한 장이 우리 엄마의 모습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부잣집 마나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팬티 한 장 살 돈도 없이 가난하지는 않았다. 크게 구멍 나고 다 해진 팬티를 입고도 자녀만큼은 부족함 없이 키워내려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궁상맞은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엄마의 옷장을 열어봤다. 오래전에 입던 셔츠, 바지 그리고 외투. 나의 어린 시절 사진첩 속 엄마가 입고 있던 옷이 그대로 옷장에 걸려 있었다. 마음 한쪽이 찡하면서도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까지 살고 있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싫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사는지 모르겠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소리쳐 보지만 엄마는 이게 엄마의 인생이라고 답했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남편보다 자식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야지.’ 다짐했다. 나중에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더라도 내 삶을 포기하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남편과 아이를 나보다 우선순위에 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남은 인생을 함께 걸어가야 할 남자지만, 보고만 있어도 배부르다는 자식이지만 그들을 위해 내가 찢어진 팬티를 입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서른세 살, 엄마가 되었다. 결혼 6개월 만에 아이가 찾아왔고, 열 달 동안 배에 품으면서 육아 관련 서적을 읽으며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 뱃속에 머물다 나온 아이는 독립된 존재임을 마음에 새겼고, 아이 스스로 본인의 삶을 선택해 나갈 수 있도록 믿고 지켜봐 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런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런 엄마가 되고 있다고 믿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내 품에 안겨있던 딸이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것 같아.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아.”

 어지러웠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세게 움직였다. 미세한 떨림이 딸에게 전해질까 무서웠다. 진실이 아니어야 할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 작은 아이가 알아챌까 두려웠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엄마는 세상에서 꿀꿀이를 제일 사랑한다고 토닥이며 아이를 진정시키고 재웠다. 그리고 숨죽여 울었다.

 ‘엄마처럼 나를 버리면서까지 지극정성으로 키우지 말아야지’ 나의 내면을 가득 채운 그 생각으로 아이를 대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의 거리를 두었다. 의도치 않게 ‘잘못된 모성애’가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부족했을 이 아이에게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하며 내가 정한 만큼의 마음만 주었다. 나의 이상한 이기심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줬고,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겉으로 보이는 엄마의 궁색함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초라해 보이던 엄마의 삶 이면에 숨겨진 깊은 사랑을 알아채기엔 어린 나이였나 보다. 좀 더 일찍 눈치챘더라면 우리는 허물없는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랬다. 구멍 난 엄마의 그 낡은 팬티는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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