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늉 냄새

봄 - 먼저 스며드는

by 기억을 맡는 사람

식재료를 가득 실은 트럭이 마을을 찾을 때면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함께 날것의 생선 냄새가 공기 속을 파고들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 냄새가 뒤를 따라 퍼졌다.


엄마를 따라 길가로 나온 아이들은 트럭 곁에 서서 진열된 것들을 올려다보았다. 이름보다 냄새가 먼저 몸에 닿았다.


할머니가 다가가자 확성기 소리가 뚝 멎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내려왔다. 할머니는 고등어나 임연수 한 마리에 계란 한 판을 사 왔다. 생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에는 계란만 들고 돌아왔다.


부엌 응달진 선반에는 계란 한 판이 늘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한 해 터울로 동생이 태어난 뒤 나는 무른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동그란 수저가 입술에 닿았다. 노란 국물에 잠긴 밥알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계란맘마 먹자.”


할머니는 계란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씩 떠 넣어주었다. 부엌에는 늘 계란 익는 냄새가 감돌았다.


칙칙칙칙.

압력밥솥의 추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부엌이 조용히 달아올랐다. 쟁반 위에 찬이 하나둘 놓였다. 밥이 익어갈수록 추는 점점 느리게 돌았다. 프라이팬 위의 생선은 소금기 어린 기름 냄새를 풍기며 노릇하게 익어갔다.


추가 멈추자 할머니는 불을 끄고 잠시 기다렸다. 치이이익. 젖힌 추 사이로 김이 뿜어져 나왔다. 뽀얀 밥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잡곡을 섞지 않은 백미에서는 맑고 순한 냄새가 올라왔다.


맨 먼저 퍼낸 밥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수북이 담아 할아버지 앞에 놓았다. 할아버지는 임연수의 껍질만 드시고 살은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수저를 놓을 무렵 엄마는 눌은밥에 물을 부었다. 한소끔 끓여낸 숭늉을 마시며 우리는 벽에 기대앉았다.


창 밖에는 숭늉빛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계절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살은 내리고 손등의 뼈는 도드라졌다. 툇마루에 앉거나 자리에 누워 지내는 날이 늘었다. 끼니때가 되면 할머니는 압력밥솥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처음 퍼낸 밥을 스테인리스 그릇에 한 주걱 담아 오목하게 눌렀다. 계란을 톡 깨 그 자리에 얹었다. 노른자와 흰자가 둥글게 고였다. 할머니는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왼손으로 꼭 쥐었다. 그 위에 한 주걱 밥을 살포시 덮었다.


할아버지는 밥 한 그릇만 앞에 두었다. 뼈가 불거진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 속 계란을 터뜨려 천천히 섞었다. 노른자가 하얀 밥알 사이로 번지며 고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간장을 한 수저 얹어 조금씩 비볐다. 우리가 숭늉을 마실 때까지 한입 또 한입 드셨다.


할머니는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압력밥솥 앞에 섰다. 숭늉이 진한 빛을 띨 때까지 잔불로 오래 끓였다. 덜어낸 한 그릇에서 하얀 김이 천천히 올랐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내려놓을 때까지.


어스름이 깊어질수록 숭늉 냄새는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