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눈빛이 언제쯤 다시 내 아이로 돌아올 수 있을까, 심란함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이 있었다. 딱 작년 이맘때,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지난주에는 부산에 다녀왔다. 아이들과 오래 걷고, 숙소에서 게임을 하고, 깊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고 따뜻한 여행이었다. 그중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첫째 딸이 내게 툭 던진 말이었다.
“엄마는 또래 엄마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요. 요즘 들어 부쩍 느껴져요. 나이도 다른 엄마들보다 어리잖아요. 요즘 들어 놀랍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하. 갑자기 왜? 엄마가 결혼을 일찍 해서? 너희를 빨리 낳아서 그런 걸까?”
“모르겠어요.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성격이 딱 내 스타일!”
그 뜬금없는 고백이 나는, 싫지 않았다. 작년의 내 눈물 섞인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듯, 아이는 맑은 얼굴로 고백을 건넸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둘째는 요즘 내 손을 두고 첫째와 실랑이를 벌이는 ‘껌딱지’가 됐다. 길을 걷다 서로 먼저 잡겠다며 투덕거리는 아이들. 엄마가 좋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풍경. 이게 꿈인가 싶다가도, 금세 짜증 섞인 얼굴로 변하는 아이를 보면 ‘아, 역시 현실이구나’ 싶어 터덜터덜 웃음이 난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지나가며 집안의 공기는 한결 잔잔해졌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더 자주 피로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마음이 허허롭다.
요즘은 부쩍 혼자가 좋다. 원래도 정적인 시간을 즐겼지만 요즘은 더욱 그렇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마트에 혼자 가는 시간, 카페 구석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고적하기보다 안온하다. 요란함이 불편해지고 낯선 자리에서는 어깨 근육부터 굳는다.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날이면 스스로에게 묻는다. 체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마음의 문제일까. 결국 이 모든 일렁임은 나에게서 시작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인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해학적이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가도, 쓰다 보면 결국 나만의 고집스러운 문체로 돌아오고 만다. 글을 잘 쓰고 싶어도 내 안의 틀을 깨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을 부쩍 느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리 둥근 사람이 아니다. 연민은 많지만 예의 없는 것을 못 견디고, 아니다 싶은 순간에는 냉정할 만큼 선을 긋는다. 운전대를 잡으면 거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내가 왜 늘 ‘어른스럽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각진 틀 안에 나를 밀어 넣으며 살았을까. 타고난 성격일까,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배운 생존 방식이었을까. 나는 대단한 사람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과 조용히 살고 싶은 소망 사이에서 울렁거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사람. 싫은 것들이 늘어날수록 그 또한 내 마음이 지어낸 집이라는 걸 알기에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므로.
광안리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막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저기 파도 보세요. 파도가 일면 멀리까지 같이 일렁여요.”
당연한 장면을 나는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내 마음이 일렁이면 주변도 따라 흔들릴 것이고, 내가 환하게 웃으면 그 웃음 또한 번져갈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응원하는 이도, 시기하는 이도 어쩌면 인생이라는 바다에 이는 하나의 파도일 뿐이다. 나는 그 요란한 물결에 휩쓸려 큰 파도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낮고 잔잔한 물결로 남고 싶은 사람. 나이가 들수록 그 마음의 선이 점점 진하고 선명해진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데 몸은 자꾸 삐끗한다. 어깨와 허리의 통증을 달고 살며, 이번 달에만 두 번이나 넘어져 팔다리에 심한 멍이 들었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며 남편과 아이들은 나를 아기 취급하며 팔을 잡아준다. 고마우면서도 허허로운, 웃기지도 않은 내 마음이여. 어른다운 어른이 되고 싶은데, 내 안에는 여전히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가 산다. 그 모순을 끌어안고 오늘도 어찌어찌 하루를 마감한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누군가 그랬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곧 다시 봄이 올 것이다. 아이들의 개학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