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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도무지 계산되지 않는 사랑의 공식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미련해 보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가혹해 보이는 세월을 묵묵히 건너온 한 여자. 인천에서 김제까지, 무거운 짐을 이고 버스를 갈아타며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은 평생을 바친 '인내'라는 이름의 훈장과도 같다. 어린 시절, 그 고단한 뒷모습을 보며 사랑에 굶주렸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엄마와 같은 눈높이가 되었다.
엄마는 대단한 효녀 중에 효녀다. 오늘도 엄마는 김제 외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기다린다는 전화를 해왔다. 엄마의 삶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어머니를 모신 고단한 수행과도 같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을 동백기름으로 정갈하게 빗어 넘기고 은비녀를 꽂으셨던 친할머니. 할머니는 엄마를 지독하게 시집살이시켰다. 그러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엄마를 지독하게 의지하고 좋아하기 시작하셨다. 집안의 절대권력이었던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질 때면, 근처에 사는 고모와 큰아빠 식구들까지 합세해 엄마를 달달 볶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엄마와 아빠의 금슬은 좋았지만, 주변 가족들은 엄마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 번씩 집안이 발칵 뒤집히던 날들. 어린 나는 그저 울며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성인이 된 지금도 나는 큰 소리만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과 시집살이에 치여 늘 짜증이 가득했던 엄마에게 어린 나는 늘 사랑이 고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한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어찌 버텼을까. 같은 여자로서 안쓰럽고, 나 또한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세월을 견디며 우리를 키워낸 엄마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내가 같은 처지였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빠가 암으로 몇 년간 투병을 할 때도 엄마는 일과 간병을 병행하며 지극정성으로 곁을 지켰다. 마지막엔 대변을 볼 힘조차 없던 아빠를 위해 손으로 직접 받아낼 만큼, 엄마는 아빠를 깊이 사랑했다.
"맨날 고생만 시키고 시댁 식구들로부터 보호도 못 해준 아빠가 왜 그렇게 좋았어?"
라고 물으면 엄마는 그저 웃으며 말한다.
"아빠가 엄마의 첫사랑이었고, 그래도 아빠는 엄마밖에 몰랐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두 분만의 사랑 공식. 나도 어쩌다 보니 남편이 첫사랑이지만, 만약 내가 엄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남편으로서는 0점이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100점짜리 아빠였기에 나 또한 아빠를 이해해 보려 했다. 그 모진 세월을 버텨낸 엄마의 사랑이 오늘따라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에 실려 더 아프고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자신을 먼저 돌보라고 매일 잔소리하는 딸이 되었지만, 엄마는 여전히 그 고집스러운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운전을 못 하는 엄마는 인천에서 김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몇 번이나 갈아타며 내려간다. 직접 담근 김치와 간장게장, 고기 뭉텅이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외할머니를 향해 가는 그 뒷모습.
꽤 공부를 잘했던 엄마였지만, 가난한 집안의 큰딸, 즉 그 시절 ‘살림 밑천’이라는 가여운 이름 아래 할아버지 손으로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교과서를 울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소녀. 그럼에도 원망 한 번 없는 착한 아이였던 엄마. 과거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효부상'까지 받았던 그 성정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한 달에 한 번, 그 무거운 짐을 들고 길을 나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엄마는 아마도 그 모진 시집살이조차 당신의 삶으로 온전히 받아내고 품어버린 것이라고. 나는 그런 엄마를 이제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 엄마의 손에 들린 짐보다, 엄마의 마음속 짐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내 꿈에 자주 나오신다. 생전 그토록 사촌 오빠들 밖에 모르셨던 할머니였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당신의 가장 든든한 손주가 되어 드린 뒤에야 비로소 나를 '최고'라 꼽아주셨던 할머니. 엊그제 꿈속에서는 집에 찾아온 할머니를 붙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며 말했다. "우리 엄마 지켜달라고, 우리 엄마 너무 가엾지 않으냐"라고. 제발 우리 엄마 좀 보살펴 달라고, 할머니 앞에서 그렇게 목놓아 빌었다.
하지만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셨다. 할머니의 그 고요한 침묵이 어쩌면 이제야 건네는 미안함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킬 테니 걱정 말라”는, 혹은 “나도 너희와 엄마에게 참 고마웠다”는 뒤늦은 고백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가만히 짐작해 본다.
엄마는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을 참 좋아하신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딘 보상을 이제야 딸의 문장을 통해 받는 것 같다고, 마음이 토닥여진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무리 엄마를 써 내려간들 그 시절 생채기 난 마음을 어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다만 이렇게라도 엄마의 깊은 상처에 정성껏 약을 바르고 밴드를 덮어본다. 그 흉터 위로 새살이 돋아 엄마의 남은 생이 부디 평온하게 아물기를, 나는 오늘도 글 몇 줄로 엄마를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