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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담희 Nov 18. 2019

왜 때려치우고 싶었지


인간관계를 때려치우고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무의식 중에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근 어떤 한 지인을 통해 천 년을 살 수 있는 고목이 500년을 살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이 아끼는 고목이라서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겨울에 겨울잠에 빠져 앙상한 가지로 겨우 버티는 나무들 사이에 단연 돋보이는 푸른 소나무 고목이었다. 역시 세월을 무시 못 하는 강한 나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죽었다.


진짜 소나무인지 아닌지 구별하고 싶으면, 겨울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소나무가 아니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지만 진짜 소나무라면 끝까지 살아남아 푸른빛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라고 하지만 왜 봄이 먼저 오는지 모르겠다. 사계절에서 첫 계절은 봄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실상 일 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겨울이 먼저다. 그리고 또다시 겨울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우리 모두 소나무 인생처럼 살라고 봄이 아닌 겨울로 시작하고 또 겨울로 마무리 짓게 한 것일까.  


소나무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은 한겨울에 온통 흰 세상이 되어버린 산을 등산했을 때였다. 그날 바지를 두 겹이나 껴입고 요란 떨며 가파른 산을 등산했다. 산 정상에는 아담한 정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정자에 앉아서 산 경치를 내려다보니 눈꽃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제일 아름다웠던 것은 눈꽃 사이에 존재감을 나타내는 소나무였다. 일편단심. 이 단어가 생각났다. 어떤 환경 속에서 변함없이 존재하는 소나무가 인상 깊었다. 그 순간만큼 그렇게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사람조차 조금 버거운 추위를 거뜬히 견뎌내는 소나무가 약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소나무를 제일 잘 아는 전문가가 말해주기를 소나무 관리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벌레가 갉아먹으면 죽고, 상처 나면 죽어버린다는 거다. 아무리 한파를 500번 겪고 이겨냈을지라도 손가락으로 잡아 조금만 힘주면 맥도 못 쓰고 죽어버리는 작은 좀 때문에 죽어버린다. 약 바르면 금방 아무는 상처 때문에 죽어버린단다. 백 년, 천 년 살 수 있는 소나무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인해 죽는다.


겨울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매년 다가오는 겨울은 덜덜 떨면서도 어떻게든 견뎌내는 건지 모른다. 일 년에 두 번씩이나 겨울을 맞이하면서 나름 노하우가 생겨 옷을 두껍게 입고, 난로를 틀면서 겨울을 보낸다.


쓰러지는 건 긴 겨울 때문이기보다 자기 몸뚱이보다 몇 배 작은 좀이 자신을 갉아먹게 내버려 두고, 손톱만 한 상처를 방치해 버리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상처 받는 일이 많다고 많은 것으로 상처 받는 존재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이는 하나밖에 없다. 우리를 사랑해주는 이가 사람이라면,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이도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같은 사람한테 상처를 받는다. 다른 것은 우리에게 흠집 하나도 낼 수 없다. 직장에서도 일이 힘든 건 버틸 수 있지만 직장 내 사람들과 문제가 생기면 너무 힘들어지는 것처럼.


인간관계가 아팠다. 그래서 아예 혼자면 어떨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처를 가만히 두면 나도 나이가 몇이든지 간에 저 500년 된 소나무가 죽었듯 무너지겠구나 싶었다.

나를 살리고 싶어서 때려치우고 싶었다. 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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