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담희 May 08. 2020

우리가 매번 도전 할 수 없는 이유

새로운 돌을 가져다 놓으려면 이전에 자리 잡고 있던 돌은 치워야 한다


우리는 매번 도전할 수 없다. 물론 도전에도 각가지 형태가 있다. 조금만 돈을 더 투자하면, 조금만 더 시간을 내면, 조금만 더 건강하면 할 수 있는 일회성 도전은 많다. 돈과 시간과 건강 세 박자만 필요할 뿐인데, 생각보다 이것도 도전하기 어렵다. 그 순간을 위해 기존성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일까. 사진 속에는 늘 남겠지만, 내게 평생 새길 수 없는 도전이다.

하나의 추억이 되는 도전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돈과 시간과 건강을 비행기 티켓 끊듯 그 순간을 위해 끊고 신세계를 즐겼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그런 도전이 아니라, 솥에 푹 고아 자신을 우려내야만 하는 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새로운 도전 앞에 나이는 무관하겠지만, 중대한 기로 앞에 설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분명한 건 큼직한 기로이든 자잘한 기로이든, 한번 시작한 건 도중에 멈추기 힘들다. 한 막이 끝나야 중단할 수 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면 적어도 한 바퀴는 돌아야 억지로라도 멈출 수 있듯이 말이다. 그 한 바퀴가 누구에게는 하루, 누구에게는 한 달, 누구에게는 그의 청춘이 될 수도 있다.


고로 우리는 매번 도전할 수 없다. 이미 돌이 있는 자리에 돌을 가져다 놓을 수 없듯이 말이다. 새로운 돌을 가져다 놓으려면 이전에 자리 잡고 있던 돌은 치워야 한다. 위로 쌓은 돌이 많을수록 이 작업이 힘들다.


이즘 나이가 되면 적게나 크게나 자신이 인생 마당 앞에 세운 돌들이 있다. 물론 엄청나고 획기적인 돌들을 세운 게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돌은 처음부터 크지 않다. 더군다나 자신을 푹 삶지 않고선 돌 하나 지불할 수 없다. 그런 돌들이다. 오직 스스로 녹아내려야 얻을 수 있는 돌 하나하나다.

과정 없이 순간 완성되는 도전은 일회성 도전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이 도전은 쌓을수록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제일 아름다운 것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다. 끝에서 나타난다. 사람의 하이라이트는 끝에 있다. 물론 그 끝이 언제인지 안다면 좋겠다.





최근 나의 돌들이 무너졌다. 애초에 쉽게 무너지지 말라고 돌로 쌓는 것인데, 한순간 무너졌다. 아무리 돌이라 해도 폭우와 태풍의 영향을 받아 무너지기도 하고, 틈이 생겨 스스로 무너지기도 한다.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완벽히 쌓지 못하면 그 단단한 돌도 언젠가는 무너진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쌓던 돌들이 무너졌어요.”라고 말했다. 몇 년 걸쳐서 한 작업인데, 돌이 무너진 것처럼 내 인생도 저와 같이 무너졌구나 싶어 앞길 가다 말고 주저앉았다.

“잘됐네.”라고 그가 대답했을 때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설명을 잘 못 했나. 그러나 설명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안 무너졌으면, 네 손으로 직접 돌들을 무너트렸을까?”라고 그는 이어서 물었다.

제대로 쌓지 못한 것들은 모두 무너진다. 무너지면 다시 쌓아야 한다. 애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었다. 간혹 무너진 채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생된다고 해서 다시 쌓지 않으면 결국 쓸모없는 땅이 된다.

내 손으로 쌓은 돌들을 무너트릴 수 있었을까? 내 체면, 자존심, 경력, 정성, 마음, 열정, 시간 이 모든 것을 무너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을까. 아마 지금까지 쌓은 돌들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시원찮은 부분이 있고 100% 만족스럽지 않지만 이제 와서 멈추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자. 하지는 않았을까. 아마 무너지기 전까지는 시원찮게 한 거 그대로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을 거다.

이미 쌓은 곳은 손대기 힘들다. 그렇다고 다시 무너트려서 쌓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잘됐다. 차라리 무너졌기 때문에 다시 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 스스로 무너트릴 수 없는 것을 대신 무너트려 준 것이다. 한 번 무너지면, 견고한 돌과 약한 돌이 여실히 드러난다. 견고한 돌은 다시 쌓고, 약한 돌은 버리는 작업을 할 것이다.

무너진 돌들을 치우고 다시 제대로 쌓는 건 새로운 도전보다 더 힘든 재도전이다. 그전과 똑같은 수준, 똑같은 마음, 똑같은 실수를 범하면 다시 무너지기에, 그전보다 더 잘 쌓아야 한다.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고 또 거듭해서 우리는 이 돌들로 나라는 작품 하나 남기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가장 큰 도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라내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