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냐

일곱 번째 끼니 - 2

by 빛새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써 내려가던 때, 나는 미국에서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아침에 등교할 때는 조별리그 경기를 조금씩 보았고, 현지 교민들과 함께 한인타운에서 스페인전 거리 응원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20년 전 급식의 추억을 한 번 꺼내 보았다.




20년 전 당시 미국 초등학교의 급식은 여러 가지 메뉴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평소 급식실에서는 멕시코식 밀박스, 일반 햄버거, 치즈버거, 기타 미국식 점심을 팔았고, 학교 급식이 맘에 들지 않는 친구들은 마트에서 파는 런치 박스를 가져오기도 했었다. 평소에는 우유 하나에 치즈버거 하나를 사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하고 이상한 네모반듯한 음식이 급식 메뉴로 나왔다. 처음 보는 음식에 호기심을 가진 어린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음식을 골랐다. 음료수도 평소와 달리 우유 대신 이온 음료가 나왔다. 급식실에 앉아 그걸 포크로 떠먹었을 때, 나는 맛의 신세계를 느꼈다. 미끌미끌하지만 나쁘지 않은 식감에 피자 맛이 나는 소스, 그리고 치즈의 느끼한 기름 맛이 섞이니, 한식에 구애받지 않았던 10살짜리 아이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라자냐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라자냐와의 황홀한 첫 만남 이후, 나는 매일 급식마다 그걸 기다리게 되었다. 오늘도 나올까, 내일도 나올까. 기억에서 라자냐가 잊히려 할 때 한 번씩 급식으로 나오니 약이 오를 법도 했지만, 그래도 맛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2003년 1월 말에 귀국할 때까지, 라자냐는 심심한 오전 수업을 버티는 원동력이 되었다.




20년 전의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냉동 라자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었다. 한 입 딱 베어 무니, 오랜만에 만난 짝사랑을 다시 만난 것처럼, 어릴 때 느꼈던 그 느낌을 그대로 받았다. 나쁜 기억만 오롯이 남고 좋은 추억은 다 변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좋은 순간이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기 때문에 떠올리기 힘들 뿐이었지.


누구나 하나 쯤 어릴 적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신비의 음식이 있다.



일곱 번째 끼니 : 부챗살 스테이크, 양파 수프, 라자냐, 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