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뱅쇼를 마신다. 콧등이 시큰해지는 초겨울이 되면, 가을에 수확한 싱싱한 과일, 향신료, 잘 빚은 포도주를 한데 모아 끓인다. 겨울 저녁에 차린 풍성한 식탁에 잘 달인 뱅쇼 한 잔을 곁들이면 매서운 칼바람도 산들바람으로 바뀐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서양식 쌍화탕을 보니, 3년 전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2018년 8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나는 독일 유학을 위해 독일어를 열심히 배웠다. 유학 준비는 실패했지만, 독일문화원에서 언어를 배우면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엔 독일어만 사용하면서 독일어에 친숙해졌고, 독일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독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었고,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통해 독일 문화와 친해질 수 있었다.
독일문화원에서는 매년 연말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최했다. 이 행사는 한 해동안 문화원에 다녔던 학생과 직원, 지역 내 독일 관련 인사들이 모여서 한 해를 보내고 내년을 기대하는 커뮤니티 모임이었다. 독일에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간식과 간단한 케이터링, 그리고 뱅쇼(독일어로는 글루바인[Glühwein])가 차려져 있었다.
평소에는 수업을 듣던 강의실이 한껏 멋있게 꾸며져 있어서, 연말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멋들어진 파티장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 해동안 봤던 사람들과 짦은 사담을 나눌 수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한 분께서 나에게 뱅쇼를 한 잔 마셔보길 권했고, 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종이컵에 담긴 서양식 쌍화탕을 한 잔 마시니 내 몸을 감쌌던 냉기가 싹 나갔다.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기운을 느낄 때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따스함이 가시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니, 포도주의 알코올을 다 날리지 않은 뱅쇼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몽글몽글하고 따스한 기분은 술이 주는 취기였다. 소주 한 잔도 못 마시는 내가 멋도 모르고 그걸 2잔이나 마셨으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당연했다. 파티 중에도, 파티 끝나고 진행된 독일어 수업 중에도 술이 깨지 않았고, 결국 난 일찍 조퇴하고 말았다.
우리는 가끔 분위기에 취해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다. 파티의 흥에 취해 무리한 춤을 추다 상처를 입거나, 실연의 슬픔에 빠져 내가 먹지 못할 정도로 음식을 마구 시키기도 한다. 3년 전 그 파티에서는,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연말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알코올이 채 빠지지 않은 포도주를 2잔이나 들이켰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날 이후 난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몸이 따스해지길 바랐지만, 취할 정도로 따뜻해지길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일곱 번째 끼니 : 부챗살 스테이크, 양파 수프, 라자냐, 뱅쇼
※ 원래는 독일풍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뱅쇼(Vin Chaud)의 독일어 표기인 글루바인이라 부르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글루바인의 프랑스어 표기인 뱅쇼가 더 유명하기 때문여 편의상 뱅쇼라고 지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