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나는 2주간의 코로나19 치료를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도 열 수 없었던 갑갑한 음압병실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맛없는 병원 밥을 먹으며 옆 사람과 TV만 보며 쌓인 스트레스들을 풀기 위해, 나는 큰 용기를 내어 대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집 앞 고등학교를 지나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걸으니, 높다란 아파트 대신 허름한 빌라와 주택들이 나를 맞아주고 있었다. 아파트 숲이 들어선 도심에서 낡고 허름한 집들을 보니, 시간의 흐름이 비켜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게 멈춰있고 나 혼자만 움직이는 이상한 나라에 방문한 것 같았다.
골목길을 타고 올라가 금강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오래전에 개장한 평범한 유원지지만, 부산 동래 지역 주민이라면 어릴 적에 소풍 가러 한 번쯤은 와 본 장소이기도 하다. 15년 만에 와 본 금강공원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계절에 맞춰 피고 지는 화단의 꽃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금강공원 산책로를 걷다가 작은 놀이동산에 도착했다. 놀이동산에 방치된 낡은 놀이기구들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옛날에도 가끔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운영 중단을 알리는 현수막은 몇 년 전부터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15년 전에는 저기서 놀기도 했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곳에서 진짜로 멈춰버린 시설들을 보게 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골목길과 공원에서는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지만, 회생 불가 딱지가 붙어버린 놀이동산에서는 그런 온기마저 느낄 수 없었다. '누군가의 추억을 위해 낡은 시설을 유지하기엔 너무나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떠오르니, 나도 노스탤지어만을 추구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단 걸 깨달았다.
아주 오랜만에 집 앞에서 추억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장 얼어붙었던 시기에 시간 여행을 다녀왔던지라, 정적인 장소가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타임머신을 타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향수는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씁쓸한 현실을 깨달았다.
이 글은 2022년 3월 Herd와 물마루가 함께했던 '나만의 여행 사진 에세이' 챌린지를 수행하며 작성한 여행기입니다. 당시에 만든 5편 중 2편은 <모두의 시간 속 당신의 시간>에 수록되었고, 나머지 3편은 출간 후 반 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