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준, 27세. 그의 스펙은 한눈에 봐도 엉성했다. 지방대, 흔하디 흔한 토익 점수, 정말 안 어울리는 자격증 두 개. 그리고 치명적인 약점 하나. 말만 하려 하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 결국 "저, 그게..."만 반복하는 지독하게 언변이 없는 것이었다. 300번의 서류 합격, 300번의 면접 탈락. 그의 별명은 말 한마디로 천냥 빚 지는 남자다. 취업 성공이 로또 1등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민준은 지쳐버렸다. '다 접을까... 지친다 정말." 민준은 어머니가 계신 시골로 향하는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을 내 쉬었다. 민준의 한숨에 뿌옇게 된 창문이 뿌연 민준의 미래 같다.
그는 어머니가 기르는 차밭에 앉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도 계속 한숨만 쉬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컵에든 냉녹차를 건네며 말했다. "민준아..." 역시 모전자전인가 민준의 어머니도 말주변이 없다. 그렇지만 묵묵히 바라보는 눈에는 '네가 뭘 해도 믿어'라고 쓰여 있었다. 민준은 차 한 모금 입에 머금고 문득 생각에 잠겼다. 민준이네 녹차는 전국에서 인정받는 명품이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고루한 이미지가 강했다. 한마디로 새롭지 않은 것이었다. 민준은 녹차를 '힙'하게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밤낮을 새워가며 녹차를 활용한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기발한 무언가가 완성되었다.
다시 상경한 민준은 야심 차게 서류를 넣었고 역시나 서류 전형은 가뿐히 통과했다. 문제는 면접. 드디어 생활건강 생필품 대기업 MS의 최종 면접 날. 민준은 면접관들 앞에 섰다. 쟁쟁한 스펙의 지원자들을 지나 민준의 엉성한 모습을 본 면접관들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박민준 씨, 자기소개 해보세요."
민준은 여전히 말을 더듬었다. "저, 저는... 그게... 음..." 면접관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그때 민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이것은... 제가 만든... '녹차 샤샤샤.. 샴푸'입니다!"
샤샤샤는 사실 말을 더듬은 것이었는데 순간 면접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샤샤샤 샴푸 네이밍 괜찮은데? 녹차로 샴푸라고?"
한 면접관이 크게 반응했다. 민준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순간 그의 눈은 반짝였다. "이 샴푸는... 녹차 추출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녹자 아니 녹차 샴푸가 아닙니다."
면접관들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민준씨 샴푸라는 겁니까 아니라는 겁니까?" 삐뽀삐뽀 민준의 머릿속에는 사이렌이 지나갔다. 위기일발이었지만 민준은 멈추지 않고 기세로 밀어붙였다. 이번만큼은 정말 합격하고 싶었다. 민준은 갑자기 병에 든 샴푸를 자신에 머리에 부었다. 그리고 머리감듯 비비며 말했다. "이 샴푸는...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어... 음.. 녹차로 샤워한 것 같은 힐링을 약속합니다!" 말은 또 부자연스럽지만 사무실 가득 신선한 청량감과 향이 가득 찼다. 면접관들은 그가 만든 샴푸의 향에 감탄했다. 그 와중에 머리에 있던 샴푸거품은 어느새 민준의 턱까지 내려와 수염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면접관들은 참지 못하고 빵 터져버렸다. 면접관들의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멈췄다. 그대로 민준의 말 못 하게 엉뚱하지만 기발한 발표는 끝났다. 실제로 말은 잘 못했으니 민준은 화장실에서 거품을 걷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아. 진짜 정말! 이번에는 붙고 싶었는데..." 그의 눈에는 최선을 다한 만큼 아쉬움의 눈물이 흘렀다. 또 말을 못 해서 웃음거리가 된 것만 같았다.
며칠 후 결과는 놀라웠다. 민준은 MS에 합격했다! 그는 좀 엉뚱했지만 그가 만들어온 샴푸는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입사 후 민준은 '녹차혁명 샤샤샤 샴푸'를 기획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도 맡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말은 잘 못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그 어떤 유창한 말보다 강력했다. 말 못 하는 취준생 박민준의 기막힌 취업뽀개기는 그렇게 성공했다. 그렇게도 바라던 회사생활이 며칠이나 됐을까. 결국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지는 남자 민준에게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