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은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설득의 마법서를 확인하기 위해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마법서는 집에 잘 펼쳐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민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장비서입니다.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속히 본사로 와주셔야 될 거 같습니다." 장비서에게 보고자료를 준비하라고 빠르게 말하고 싶었지만 왜인지 민준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알았네." 민준은 겨우 입을 떼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민준의 말의 능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서의 힘이 사라지자 민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해외사업 미팅은 대실패로 돌아갔고 회장도 민준에게 이번건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회사에서는 민준의 무능력에 대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그의 유려했던 말솜씨는 다시 예전처럼 횡설수설하는 '말더듬이'로 돌아왔다. 민준이 로맨틱 라이프에서 이룩했던 모든 성과는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듯했다.
회의실에서 민준의 말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평범했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았다. 한때 민준의 말 한마디에 감탄하던 직원들은 이제 그를 비웃기 시작했고 그가 차지했던 부회장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민준은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허상에 불과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민준은 두 주먹을 꽉 쥔채 책상을 내리쳤다. 그때 끼-익 민준의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다름 아닌 민준을 줄곧 의심해 왔던 우혁진이었다.
"박민준 이사님,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오셨군요. 당신이 가진 그 특별한 재능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혁진은 비꼬듯 자신의 손에 든 낡은 책을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설득의 마법서'와 똑같이 생긴 책이었다.
민준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네가 그 책을... 오늘 아침에도 보고 와.. 왔는데" 혁진은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당신이 왜 이 책을 그렇게 소중히 하는지, 그리고 이 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 이제 알게 됐으니까요."
혁진은 민준이 출장 간다는 소식을 접한 후 몰래 민준의 집에 들어가 책을 도둑질하고 다시 동일한 디자인을 제작해 책을 바꿔치기한 것이었다.
"당신 집에 있는 책이 진짜일까요?
설마 했는데 정말 이 책 때문에 바뀐 거였다니 놀랍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힘이 생기지 않더군요. "
"너.. 뭐야!"
"쉽게 말해줄게요. 민준씨 우선 지금 협업 프로젝트의 전권을 저에게 넘기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든 내용이 당장 내일 기사화될 겁니다. 그리고 이 책도 이제 제 겁니다. 그저 낡아빠진 책인데 태워버리는 거 괜찮죠? 그럼 당신은 영원히 말더듬이가 되는 거고. 하하하하!"
혁진은 비웃으며 민준의 자리를 뺏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그 책으로 민준을 짓밟으려 했다.
민준의 평판은 점점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려갔다. 다만 모두가 민준에게 등을 돌렸을 때 유일하게 그의 곁을 지켜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윤서하였다. 민준은 더 이상 말의 능력이 없었지만 서하는 묵묵히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민준 씨, 말 못 해도 괜찮아요. 저는 민준 씨의 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서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민준의 굳게 닫혔던 마음을 녹였다. 민준은 서하에게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설득의 마법서'를 얻게 된 과정, 말의 능력에 취해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 그리고 마법서의 힘이 사라진 후 겪은 고통까지. 서하는 민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민준 씨, 당신을 변화시킨 건 그 책이 아니라, 당신의 진심이 아닐까요?"
서하의 말에 민준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서하의 따뜻한 눈빛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던 가장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