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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3. 2019

아이는 원색으로 태어난다

16개월 호두는 한 달 한 달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 하루 간격임에도 성장의 폭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라 매일매일이 참 새롭다. 어제는 못했던 일을 오늘은 하고, 그동안 들려주지 않았던 단어를 갑자기 득도한 듯 외칠 때 깜짝 놀라고는 한다.


몸과 머리의 성장만큼 호두의 마음도 급격히 자라고 있다. 그동안은 감정의 분화가 잘 안되어서 혹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넘어갔던 일을 긍정과 부정으로 분명히 표현한다. 좋을 때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고, 싫을 때는 짜증과 징징거림을 보여준다. 온도 차이가 극명히 달라서 여러 가지면에서 호두의 선호도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긍정의 춤을 보여줄 때는 참 귀엽지만, 부정의 징징이를 보여줄 때는 도망가고 싶어 진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엄마에게는 천둥소리만큼의 느낌을 준다 하던데, 정말 그 말에 무척 공감한다. 일 년 넘게 들어온 호두의 울음이지만, 나는 여전히 호두가 울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호두의 징징이는 아직 한참 더 적응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것도 많지만, 싫은 것도 참 많은 호두가 신기하다. 싫은 것을 1초 만에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호두가 부럽기도 하다. 어른이 된 나는 너무 사회화가 되어서인지 싫은 것도 숨기는 능력, 싫지만 참고하는 능력이 생겨났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는 데에 이 능력이 도움이 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은 것을 싫다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그리워지곤 한다. 부정의 징징이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 안의 자유를 발견할 때면 아이가 한없이 부러워지고, 이 자유를 좀 더 오랫동안 존중하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


아이는 원색으로 태어난다. 누구나 처음 세상에 나올 때는 자신만의 선연한 색깔을 지니고 온다. 환경, 부모의 성향, 부모 외의 인간관계 등을 거쳐 나가며 아이는 점점 자신의 색깔을 변화시켜 나간다. 사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살아가려면 내 자신의 색을 조금도 잃지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일정 부분은 지키며, 일정 부분은 양보하며 그렇게 자신의 색의 채도와 명도를 만들어 간다. 아이가 겪는 과정 속에서 존중과 긍정이 많았다면 그 아이는 원래의 색깔만큼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신의 색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색이 분명 자신의 마음에도 들 것이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원래 자기 색깔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게 전혀 다른 색깔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어떤 색깔이 되었든 스스로의 색깔을 평생 동안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아이가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어떤 피드백을 주는 부모일까. 이제까지는 그저 사랑만 해주면 되었던 아기가 점점 사랑 외의 것도 요구하고 있다. 아니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선호를 존중해달라고, 자신이 세상을 향해 모험해나가는 이 여정을 막지 말고, 응원해달라고.


기본적인 성격에 지배성이 강한 나인지라 처음 부모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을 때 두려움이 컸다. 내가 아이를 너무 내 뜻대로 강하게 억압하지 않을까. 아이의 자유를 통제하지 않을까. 여전히 내 안의 강한 부분이 두려울 때가 있지만, 기도하며 최대한 호두를 존중하는 육아를 하고 싶다. 자유로운 영혼의 호두 모습 그대로 꺾이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다.


호두는 어떤 색을 가진 어른이 될까? 지금 가진 선명한 이 색을 되도록 많이 잃지 않는 호두가 되었으면 한다. 어떤 색이 되었든 스스로 그 색을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자신 스스로가 근사하다 생각하는 삶만큼 소중한 삶은 없으니까.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색을 소중히 여기고, 그 색을 지켜나가는 일을 용기 있게 해 나가길.


사랑하는 호두야, 너의 색은 이미 아름답단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름다울 거야. 너의 초심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시시때때로 나누어주는 친구가 될게. 우리 기억을 더듬어 마침내 스스로의 색을 잘 찾아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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