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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4. 2019

나를 간직한다는 것은

요즘 나는 조금은 편안한 육아를 하고 있다.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과 마음 모두 조금은 누그러졌다. 초조했던 마음과 달리 왜 요새는 조금 편안해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건 내 육아가 내 삶의 방식과 어느 정도 맞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때 취업 준비로 한참 힘들었던 시절, 친구들과 어느 날 졸업을 백일 정도 앞두고 케잌을 사서 자축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가 난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는 미래가 참 두려웠거든. 30대에 나는 어떨까. 40대에 나는 어떨까. 왠지 많은 것이 변할 것 같아 불안하고 무서웠어. 그런데 오늘 문득 든 생각인데, 30대에도 40대에도, 아니 80대에도 나는 왠지 나답게 살고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니 좀 덜 무서워졌어. 언제든 나답게 산다는 건 편안한 것이니까."


불안한 미래를 앞두고 그 이야기를 하며 나는 작은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의 반응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들도 평안했던 시간이길 바란다.


아이를 처음 낳았던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육아에 일자무식인 내가, 기저귀 하나 제대로 가는 방법도 모른 채 출산하러 온 내가 과연 이 어린 생명체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조리원에서 우는 아기를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순간은 좌절감을 느꼈다. 집에 와서는 말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매일 궁금한 모든 것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마음도 복잡해졌다.


이 얘기에 이리로 갔다가 저 얘기에 저리로 가며 그렇게 흔들리며 육아를 했다. 부모님들의 작은 한 마디에도 휘청 흔들리며, 휩쓸려 갔다. 내 자신을 믿지 못했고, 내 눈 앞에 있는 아이를 관찰하는 것만은 왠지 불안했다. 그렇게 힘겹게 육아를 하다 보니 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 년이 지난 뒤 갑자기 내가 육아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부족한 엄마이고, 여전히 우리 아기는 안개 같이 한 치 앞도 모르겠는 존재다. 하지만 내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무리했던 일들을 인식하고, 나의 능력 범위 내로 모든 일을 정리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하고, 할 수 있는 일은 가급적 보다 지혜롭게 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내 삶의 방식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육아 중에서 내 삶의 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것 또한 점점 포기했다. 나의 능력과 삶의 가치관에 적합한 육아 방법을 찾아가다 보니 마치 내 옷을 입은 것처럼 점점 편안해져 갔다.


아이도 내 삶의 방식과 육아 방식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서로의 호흡을 맞추다 보니 훨씬 더 서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재밌게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스킨십과 말로 사랑을 많이 표현하는 나.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내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 육아의 모든 부분 중에 음식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나. 동굴 스타일이라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지만, 아기를 위해 점점 밖에 나가려고 용기를 내고 있는 나. 세밀한 것에 신경 쓰길 좋아하고, 소박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나.


엄마가 된 지금도 원래의 내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크게 달라지지 않고, 내 스스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늘 입는 잠옷처럼 편안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나를 잃는 것이 되지 않길 원한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원래의 나를 간직한 채 나를 좀 더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나날도 축복 같은 나날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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