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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6. 2019

여름 맛

올해는 호두가 처음 맛보는 여름이다. 작년 여름도 호두와 함께였지만, 아직 분유만 먹는 터라 음식을 하나도 맛보지 못했다. 돌이 지난 뒤 밥을 먹기 시작한 호두는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여름 채소, 과일을 만났다.


오이, 노각, 감자, 가지, 옥수수, 수박, 자두, 블루베리..... 뜨거운 볕과 함께 쏟아지는 채소와 과일을 맛보며 호두의 여름은 그렇게 화려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특히 찐 오이와 오이 무침을 좋아하는 호두는 오이 반찬만 나오면 그렇게 좋아했다. 간식으로 같이 감자를 쪄먹기도 하고, 삼시세끼 후식으로 여름 과일을 실컷 맛봤다. 다른 계절에 비해 달달한 여름 과일을 먹으며 호두는 참 행복해했다.


한 계절을 오롯이 살려면 그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를 맛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 미각을 통해 입에 들어온 계절에 온전히 느끼며, 그렇게 천천히 계절을 씹어보는 것이다. 여름의 맛은 강렬한 태양만큼이나 여문 단맛으로 다가온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계절의 변화를 이렇게 오롯이 느낄 수 없었다. 남편과 맞벌이 부부로 살며, 직장일과 집안일에 허덕이다보면 과일을 챙겨 먹는 것 자체가 사치로 다가온 적도 있었다. 수박을 사다놓으면 제대로 잘라놓지 않아 안 먹다보니 상해서 버리기 일쑤였다. 결국 우리 부부는 암묵적으로 수박만은 사놓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다른 과일 또한 자주 사기는 어려웠다. 상해서 버려지는 것들이 많아 신선한 식품을 사놓는 것이 버거웠다.


그런 우리집 식탁이 바뀌게 된 건 이 조그마한 아기 덕분이다. 삼시세끼 밥에 후식까지 먹는 아이를 챙기느라 신선한 채소와 고기가 냉장고에 늘 구비되어 있고, 과일도 빼먹지 않고 사놓게 된다. 과일 먹으며 신나하는 아이를 보면 가격표에 망설이다가도 눈 질끈 감고 장바구니에 넣게 되더라. 


바로 먹기 좋게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층층이 쌓아두어서인지 세 가족이서 수박 한 통을 일주일 안에 다 먹는 일도 생겼다. 실제로 아기가 먹는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먹기 쉽게 준비되어 있다보니 엄마, 아빠도 자연스럽게 자주 꺼내 먹게 되어서인 것 같다. 


30여년을 살아오며 올해 처음 느낀 것인데, 이 시기가 이렇게 풍성하고 좋은 시기인줄 몰랐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 봄, 여름 사계절 동안 아기 밥과 후식을 꾸준히 준비하다보니, 지금 이 시기가 쓸 수 있는 재료가 가장 많은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두에게 여름 맛은 어떤 맛일까. 호두 덕분에 맛본 엄마의 여름 맛은 유난히 달콤했다. 호두가 조금 더 크면 우렁차게 우는 개구리 소리, 밤이 되면 기분 좋게 감싸져오는 공기, 땅의 별 같이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함께 느끼고 싶다. 그렇게 오감으로 느끼는 여름 맛은 호두에게 삶의 소중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여름 맛을 느끼는 요즘 참 행복하다. 아기 덕분에 얻게된 쉼표의 삶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낮에는 육아가 고되게 느껴질 때도 많지만, 밤이 되고 하루를 되돌아보면 아기에게 감사한 것이 참 많다. 아기가 나의 삶을, 나의 계절을 더 깊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호두와 뜨거운 여름을 깊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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