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Jul 18. 2019

아쉬운 것이 많은 사람

난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과 맞벌이 부부 생활을 하며 둘이서 지내다보니 시간도 넉넉했고, 체력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나의 생활은 잘 돌아갔다. 그러다보니 한 지역에 사는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자꾸 소원해졌다. 붙임성이 많지 않고, 낯도 가려서 늘 시부모님을 어려워하던 나는 안부 전화도 참 쑥스럽고, 찾아 뵈어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에'


어느 글에서 본 이 표현에 깊이 공감한 건 아이를 낳고 난 뒤였다. 아이를 낳으니 내 생활의 모든 균형은 무너졌다. 부족한 잠, 챙겨 먹기 어려운 끼니로 체력이 자꾸만 바닥이 났고, 마음도 바닥을 보인지 오래 되었다. 한 두 번 푹 자서는 해결되지 않을 뿌리 깊은 피로를 늘 달고 살게 되었다.


이런 나를 가장 공감해준 것은 친정 엄마나 남편이 아닌 시어머님이었다. 육아를 하게 되면 먹을 것을 잘 못 챙겨 먹고, 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계시고, 또 그 부분을 안쓰러워하셨다. 아이가 어릴 때는 우리 집에 오셔서 내게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 낮잠을 자도록 해주셨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외출이 자유로워지고 부터는 시댁에 오도록 하셔서 끼니를 제때 챙겨주시고, 틈나면 자꾸만 자게 하셨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아쉬운 것이 참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 아쉬움들이 나를 구멍 슝슝 난 스펀지 같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그 구멍이 창피해서 힘들어 했다. 그런 내 구멍을 막아주는 시어머님을 보면서 구멍이 그저 구멍이 아니라 누군가 내 마음에 들어올 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더 깊이 있게 교제하려면 서로 간의 틈이 있어야 가능한데, 아이를 통해 만들어진 그 틈으로 인해 어머님을 더 알게 되고, 더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 관계가 앞서 말한 것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서로 다른 육아관으로 어머님과 소리 없는 갈등을 느낄 때도 있고, 아이를 위해 하시는 말에 괜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아마 어머님도 나에게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께서 기본적으로 내게 느끼시는 감정이 긍휼함이기에 참 감사하다. 내 인간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듦과 필요를 먼저 살피시는 그 마음이 고맙다.


삶이 내게 주는 모든 것에는 늘 양면이 존재했다. 나는 아쉬운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만큼 감사함을 느낄 일도 많은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아쉬운 사람으로 살아갈 날이 많을 것 같지만, 누군가의 아쉬움을 채워주는 날도 언젠가 분명히 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좀 덜 죄송해하며 살아야겠다. 언젠가는 갚을 그 날을 소망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