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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23. 2019

시간 결핍자의 슬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지 않은 저녁이었다. 특별한 일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던 하루였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까. 저녁 내내 왜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지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았다. 집중해야 할 대상이 내가 아닌 아기이다 보니 나는 가끔 내 기분의 동향조차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그건 단점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기분을 살피지 못해 원인 모를 슬픔을 겪어야 할 때도 있지만, 내 자신에게만 너무 몰려 있던 관심과 예민한 촉각을 조금은 뭉그러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나가다 보니 아버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버님은 어제 새벽에 잠드시는 바람에 피곤하셔서 오늘 아침 늦게까지 주무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다 저도 아침잠을 원 없이 자보고 싶어요, 아기 낳고 원 없이 자본 적이 거의 없던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다. 아침잠이 많아서 아이 울음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 신랑으로 인해 주말에도 아침 육아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일찍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놀아달라는 아이로 인해 피곤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도 일찍 자면 되지 잘 시간 충분하네라고 답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아버님께서 특별히 나의 심기를 건드리신 이야기도 없었고, 대화 당시에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다지도 마음이 가라앉을까.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감정 없이 툭 하신 그 말씀이 지금 내가 가장 힘겨워하고 있는 부분을 건드린 것이 이유였다.


아버님의 말씀은 옳다. 내가 일찍 자면 해결되는 문제다. 아이 재우고, 남은 집안일을 끝낸 뒤 곧바로 자면 된다. 단 그 어떤 자유 시간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잠은 푹 잘 지언정 내 삶 속의 나를 위한 시간은 하나도 없어진다.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자유시간의 종말은 삶다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돈다.


바삐 하루를 보내고 겨우 확보하는 1~2시간의 자유시간 마저 내게 사치인 것일까. 별 뜻 없이 아버님께서 건넨 말에 폭포수 같은 감정이 툭 터져버린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만나고 싶다. 가고 싶은 곳을 훌쩍 여행하기도 하고, 쌓아놓은 책을 원 없이 읽고 싶다. 마음속에 알알히 맺혀있던 많은 욕망들이 모두 다 제 주장을 펼친다. 괜히 서러워진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크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아이가 내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시간은 삶에서 잠시 잠깐이다. 나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에 매우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지금 내가 느끼는 시간 결핍의 슬픔을 채워주진 못한다.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이다. 행복한 건 행복한 것이지만, 슬픈 것이 슬프지 않을 순 없다.


내가 오늘 슬펐던 이유는 공감받지 못해서이다. 지금 시간 결핍을 겪고 있지 않거나 겪은 지 너무 오래된 사람들과의 대화 중 이렇게 슬펐던 경험이 종종 있다. 이런 일을 겪을 때 나 또한 누군가의 결핍을 나도 모르게 건드렸던 적은 없는지 생각해본다. 있는 자가 없는 자의 마음을 공감해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므로.


아버님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때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나를 공감해주지 않을 때의 마음이 더 아파질 때가 있다. 아버님께서 나를 공감해주시기에는 우리의 세대 차이, 상황 차이가 너무 크단 생각도 든다. 그저 아버님보다 그 문장 자체가 내게 아팠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라도 건드리면 툭 터질 여드름이 내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지금 내가 겪는 이 시기의 시간 결핍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아픔은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 해 주었다. 그 세상을 사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었고, 앞으로 그 세상을 살 사람의 마음 또한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로 우린 아픔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겪지 않으면, 잃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알 수 없이 슬펐던 내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이를 통해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글을 쓰며 나는 좀 더 내 감정의 본연에 다가갔다. 자꾸만 아는 체해달라는 내 감정에게 아는 체를 해주며, 그래 너 거기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감정에게도 인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인정해주다 보면 조금은 누그러지곤 하기 때문이다.


내일도 나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고, 때론 채우지 못하는 소망들에 아파할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내 감정을 알아주는 내 자신이 있고, 내 글이 있다는 것에 작은 위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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