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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24. 2019

참 초라하다

요새 살면서 가장 초라한 시기를 살고 있다. 매일 아침 거울 속 추노를 보며 흠칫 놀란다. 누구세요?


나는 모든 것에 정성을 다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늘 정성을 다해 외모를 다듬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꼼꼼하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졌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사고 실패하며 나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도 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성스럽게 잘 매만진 다음에 밖으로 나가는 기분은 참 좋았다. 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 참 좋았다.


아침 출근길에 부스스한 얼굴과 초라한 차림으로 어린이집에 가는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이 낳으면 절대 저렇게 다니지 말아야지.


절대 저렇게 다니면 안 되는 비주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 출근 길마다 부정하던 그 모습이 지금 거울 속 내 모습이다. 사람은 왜 이리도 간사한 걸까. 남에게는 사정없이 들이대던 잣대가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이를 낳으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앞에서 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작은 존재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일로 인해 정작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것을 말이다. 외출을 위해 아이를 준비시키다 보면 벌써 지쳐서 꾸미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맨얼굴로 나갈 때가 다반사이고, 그나마 찍어 바른다는 것은 비비크림 정도이다.


휴직으로 인한 가정 경제의 빡빡함도 한 몫한다. 모태 곱슬인 나는 매직 파마를 자주 해줘야 온전한 머리가 유지되는데, 비싼 파마 값을 아끼다 보니 점점 머리가 정글이 되어 간다. 휴직 전에는 철마다 새 옷을 사며 계절의 시작을 알렸지만, 이제는 옷을 거의 사지 않는다.


출산 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세련된 엄마들도 많다. 이건 내 에너지 한계의 문제이다. 이미 육아만으로 나의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의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에 내 자신을 돌볼 여유가 많이 없는 것이다. 아이를 돌보며 자신도 예쁘게 가꾸고 있는 어머님들이 존경스럽다.


가끔 만나는 친척은 내가 아이 낳기 전까지 참 예뻤는데, 왜 이리되었냐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칭찬인가 싶었는데, 자꾸 들으니 좀 꾸미라는 이야기 같다. 아직은 꾸밀 여력이 없어 그분을 만날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내 마음속 에너지가 차오를 때까지는 당분간 최대 초라함을 계속 경신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창피함을 느낄 여유가 없어 다행이다. 외모는 가장 초라한 시기이나 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의 시간은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둘 다 반짝반짝 빛나면 참 좋겠지만, 내 그릇이 작기에 이 정도로 만족해본다. 초라하지만, 초라하지만은 않은 신기한 시기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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