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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25. 2019

고통을 응시하는 밤

외면만 했던 고통을 물끄러미 응시해본다

오늘은 호두가 태어나고 지난 16개월 동안 꾸준히 나를 괴롭혀온 고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고, 아물지 않은 생생함이 남아있기에 글감으로 쓰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오늘 오후에 은유 작가님의 고통 쓰기에 관한 글을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은 고통스러울지 모르나 완성한 뒤에는 용기를 되려 얻을 수 있다는 문장이 마음을 만졌다. 더불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타인의 시선, 타인에게 비친 '자아의 환영'에 두려워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라는 문장 또한 좋았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을 쏟을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 말에 용기가 났다.


호두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다. 신생아 때부터 태열을 포함한 각종 피부에 관한 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소아과 선생님들로부터 아토피로 발전할 것 같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먹먹한 마음을 안고 아토피 아기 관리에 대해 검색했다. 많은 아이들이 돌을 기점으로 아토피로 의심되던 증상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호두는 돌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아토피가 맞았다.


내가 두 배로 더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호두의 아토피가 유전적인 영향이 커서이다. 나는 어릴 때는 아토피가 없었으나 성인이 된 뒤 고시 공부를 하느라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아토피 피부염에 걸렸다. 지금도 낫지 않았다. 식단 관리를 좀만 소홀히 해도 접히는 부위에 금방 올라온다. 다행스럽게도 식단 관리를 잘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임신했을 때는 아기가 아토피를 물려 받을까봐 무척 두려워졌다. 최대한 음식을 조심히 먹으면서 노력했지만, 결국 호두는 아토피를 물려 받게 되었다.


호두는 나와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다. 가려우면 피가 철철 날 때까지, 살이 움푹 패일 때까지 긁어 상처를 낸다. 먹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자신을 아직 절제할 수 없는 아기의 아토피를 관리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육아에 더해 집안일도 두 배로 늘어났다. 집안과 침구도 깨끗이 관리해줘야 하고, 음식도 가급적 건강한 식단으로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바르면 호두의 피부염은 며칠 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연고를 잠시 쉬는 시기에는 다시금 또 올라왔다. 연고와 함께 좋다는 크림도 골라가며 발라보아도 차도가 없었다. 현재는 아토피 전문 병원에 예약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의 증상이 늘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내 신경 또한 자꾸만 예민해져 갔다. 아이가 피부를 피가 나올 때까지 긁을 때면 표정 관리가 안되고, 나까지 스트레스를 받았다. 긁는다고 혼낼 수는 없어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지만, 자꾸만 굳어지는 표정, 안돼 안돼를 연발하는 소리까지 막을 순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하나둘씩 늘어나는 상처에 아침부터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이 마음의 고통이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질 거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쉽게 나을 수 없는 것.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는 것. 아토피가 커다란 산 같이 느껴졌다.


오늘은 드디어 터질 것이 터지고 말았다.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아이이다 보니 기저귀 발진도 잘 일어나는데, 요새 증세가 좀 심해져서 자주 기저귀를 벗겨놓았다. 오늘은 날이 많이 습해서인지 발진이 좀 더 일어났길래 계속 기저귀를 벗겨 놓고 생활했다. 지인과 잠깐 연락할 일이 있어 휴대전화를 만지는데, 느낌이 싸해서 뒤돌아보니 아이 외음부가 피투성이었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바들바들 떨어서 아이도 깜짝 놀라고 같이 떨었다. 아이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눈을 꼭 감고 계속 소리를 내며 떨었다. 무서웠지만, 눈을 뜨고 아이의 외음부를 확인하니 처참해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아이가 살이 다 까져버릴 정도로 아래를 긁어댄 것이다. 여기저기 패인 상처와 뚝뚝 흐르는 피를 보고 나도 모르게 아이를 꼭 안았다. 아이의 피가 내 옷에 잔뜩 묻었다.


살면서 호두가 그렇게 피가 많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 자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가 더 놀랄까 봐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렇게 한참 서서 아이를 안고 가만히 있었다. 앞으로 이 녀석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 이 녀석의 고통을 내가 어떻게 지켜볼 수 있을까. 아이의 몸에 패인 상처만큼 내 심장에도 상처가 패이는 느낌이었다. 너무 고통스럽고, 아팠다.


그 일 이후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약간 얼이 빠져 지냈다. 내 앞에 놓인 육아라는 길이 유난히 힘들고 버겁게 느껴졌다. 두렵고 무서웠다. 아토피가 과연 완치될 수 있을까. 완치되기까지 나는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시작도 전에 이미 지치는 느낌이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며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하셨다.


'호두의 몸은 비록 아토피를 겪고 있을지 몰라도 마음에는 아토피가 없지 않니. 호두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다.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크는 그 모습에 집중하렴. '


생각해보니 그랬다. 호두는 마음이 참 건강한 아이이다. 부모인 나와 남편보다 더 건강하고, 예쁘게 크고 있는 아이이다. 아이가 겪는 몸의 질병에 휩싸여 더 큰 것을 바라보지 못하는 나에게 주시는 평안에 감사했다. 바울의 가시처럼 호두에게 있는 가시가 더 깊은 삶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두의 가시는 곧 나의 가시이다. 아이의 아토피를 함께 겪으며 나 또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 또한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호두와 나에게 과연 해만 되는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두려움이 차츰 걷혀졌다.


은유 작가님은 고통을 응시하며 나의 삶을 나의 서사로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글을 통해 역설했다. 나는 그것에 하나 더 붙이고 싶다. 일단 고통에 대하여 글을 쓴 뒤 그렇게 응시한 고통 속에서 감사해야 할 거리를 찾다 보면 용기와 더불어 희망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억지로 끼워 맞춘 감사, 강요된 희망이 아니라 처참하게 내려앉은 마음속에서 작은 불씨 같은 흐릿한 희망 말이다.


괴로운 하루였지만, 작은 불씨의 희망을 안고 잠든다. 호두를 키워가며 함께 헤쳐나가야 할 고통이 허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고통을 통해 배울 공부가 남아있다. 오늘도 엄마로서 한 가지를 아프게 배웠다. 내일의 나는 조금은 다른 엄마일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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