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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30. 2019

골목에서 만난 여름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이 꼭 공기방울 안에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받는 삶 또는 그 안에서 아이와 고립될 수도 있는 삶.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나는 귀찮게 하면 안 되는 사람, 늘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다. 모임에 빠질 이유가 충분한 사람,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할 사람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내가 속해있던 모든 것에서 빠져나와 자유인이 되었다. 더 이상 나는 연가 결재를 올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고, 내일까지 보내야 할 기안문이 없었으며, 모임에 빠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사회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나였기에 이 생활이 좋기도 했고, 아기를 낳았으나 여전히 사회적 동물이기에 가끔씩은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사실이 불안하기도 했다.


사람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외부환경에도 보호받는 삶이었다. 여름에는 더운 줄 모르고 살았고, 겨울에는 추운 줄 모르고 살았다. 약하디 약한 아이를 위해 에어컨과 보일러가 열일을 해주었다. 적정 온도와 습도 속에서 보호받으며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계절을 느끼지 못해 아쉽다는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내게는 지금 눈앞에 꼬물대는 녀석이 아프지 않고 지내는 게 최선이었으니까. 땀띠와 감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나의 사계절은 훌쩍 지나갔다.


오늘 일이 있어 혼자 운전을 할 일이 있었는데, 습관처럼 틀어놓던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 보았다. 살랑살랑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상쾌하게 느껴지는 좋은 날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아낌없이 불태우는 매미의 울음소리도 오랜만이라 반가웠고, 곳곳의 여름 냄새도 친숙했다. 순간 깨달았다. 아, 이렇게 온전하게 여름을 느껴본 적이 1년 만이구나.


그렇다. 오늘 내가 만난 여름은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여름이었다. 온전하게 온몸으로 느낀 여름이었다. 아이를 통해 바라본 여름은 시원하고, 상쾌한 여름이었을지 몰라도 진정한 여름은 아니었다. 더울 때는 더워야 하고, 추울 때는 추운 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는 왜인지 그 인공적인 여름이 아쉽게 느껴지고는 했다. 남편이 없는 오후에는 항상 에어컨 없이 자연바람과 선풍기에 의지하며 보냈던 나에게 아기와의 여름은 생소했다.


언제쯤 아이와 온전한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몇 년이 걸리겠지. 어쩌면 아이가 자랐다는 건 온전히 그 계절을 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여름은 여름답게, 겨울은 겨울답게. 좀 덥고 춥더라도 그렇게 아이와 담뿍 계절을 느껴보고 싶다. 간이 안된 음식에서 점점 어른의 음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아이의 식생활처럼 아이의 계절 공부도 그렇게 점점 간이 안된 아이의 계절에서 엄마의 진한 계절로 나아갈 것이다.


골목에서 만난 올해 첫 여름. 참 반가웠다. 삐질삐질 땀나는 이마가 힘겹더라도 공기방울 속에서 나와 진짜 여름을 마주칠 기회가 더 많은 올해 여름이었으면 좋겠단 소망을 가져본다. 여름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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