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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31. 2019

육아가 가르친 균형

요즘 호두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누군가 본다면 눈에서 사랑이 뚝뚝 흘러 넘친다 말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달리 애교가 많은 호두는 엄마, 아빠의 애간장을 녹이는 방법을 잘 안다. 살살 눈웃음치면서 코를 찡긋 거리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애교를 부리는 호두를 보면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녀석이 내 딸일까 싶다. 무뚝뚝하고 조용한 아기였다는 내가 말이다.


엄마, 아빠를 살살 녹이는 호두의 애교와 함께 점점 상승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고집과 떼부림이다. 본인 마음에 안들면 일단 드러눕기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대체 이런 건 누가 알려준건지 싶다. 자기 마음대로 될 때까지 엉엉 울고, 소리 지르는 녀석의 징징거림은 나의 뒷통수 신경을 자꾸 긁는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두통이 띵하고 온다. 아이의 울음에 너무 취약하다보니 그 울음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꾸만 식은 땀이 나는 느낌이다.


두 얼굴의 호두. 오늘 그런 호두를 바라보며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균형을 배우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게도 아이는 늘 엄마의 균형을 생각하며 자라준다. 신생아 때는 일단 꼬물꼬물 거리는 앙증맞은 귀여움과 수시로 찾아오는 낮잠 시간으로 엄마의 정신력과 체력의 부담을 덜어준다. 점점 커가며 낮잠 시간도 줄어들고 해주어야 할 것도 늘어나지만, 그것과 비례하게 아이의 귀여움과 아이에 대한 애착감도 늘어난다. 점점 말귀를 알아듣고, 표정이 풍부해지고, 재밌는 반응을 하는 아이를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난다. 또한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조금씩 깊어지는 애착감은 얘는 정말 내 자식이란 깊은 유대를 느끼게 한다. 아이로 인한 행복과 힘듦은 계속 다른 모양으로 균형이 맞춰지고 있다. 참 신기하다.


오늘도 그런 균형을 느낀 순간이 있다. 며칠동안 바빠서 쌓일대로 쌓인 집안일과 피로감으로 아침부터 참 힘들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열심히 움직이며 일했는데, 열심히 어지럽히고 다니는 녀석 때문에 계속 도루묵이 된다. 너무 힘들어서 자꾸만 화가 났다. 아이 곁에 누워 이런 저런 장난을 하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호두야, 엄마가 호두를 많이 많이 사랑해. 호두도 엄마 사랑해?"

"응응!"


평소 호두는 사랑해라는 말을 들으면 머리 위로 어설픈 하트를 만든다.(그냥 머리에 손바닥을 붙인다 표현하는게 더 맞을 듯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아이가 사랑해의 발음만 구별하는 건지, 담긴 의미까지 이해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호두에게 사랑한다 말할 때 짓는 표정과 눈빛, 목소리에서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걸까? 호두의 대답이 신기해서 두 번 더 물어봤는데, 호두는 그때마다 "응응!" 대답했다. 호두의 짧은대답이 엄마의 무거운 하루를 조금은 가볍게 해주었다.


삶에서도 균형은 참 중요하다. 무엇 하나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적절히 비율이 맞아야 건강히 살아갈 수 있다. 지나친 기쁨과 지나친 슬픔, 과한 행운과 과한 불행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적절한 기쁨과 슬픔이 조화를 이룰 때 삶은 행복하기도 하고, 배울 점이 있기도 하다. 그런 삶의 묘미를 육아를 통해 배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안에 힘든 일을 감당할만큼의 기쁨도 숨겨져 있고, 기쁜 일이 있어도 그에 상응하는 힘든 일이 있다.


육아는 끝이 없는 것이지만, 육아로 인한 힘듦도 왠지 끝이 없을 것 같다. 죽는 날까지 자식을 돌보는 이 삶의 무게가 결코 가벼워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렵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힘듦을 상쇄할 행복과 기쁨 또한 숨겨 놓으셨음을 믿기 때문이다. 호두를 키우며 힘들 일이 예상될 때마다 호두가 나에게 줄 기쁨과 행복 또한 생각하게 된다.


삶은 슬픈 것이고, 기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일이 두렵지만, 설레인다. 이 균형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기쁨에 교만해지지도, 슬픔에 우울해지지도 말아야겠다. 어차피 모든 것은 다가오고, 지나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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