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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ug 08. 2019

낮에는 아이를 생각하고, 밤에는 나를 생각하다

아이를 낳고 난 뒤 나는 좀 멍해졌다. 영혼의 절반을 아기에게 전해주고 절반으로만 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어떠한 일을 하려면 온 힘을 쏟아 집중해야만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집중력 또한 작은 방해에도 잘 흩어지는 편이다. 아이가 태어난 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아이에게 온 힘을 쏟아 집중하는데, 슬프게도 그 외의 일에는 집중력을 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증상은 대부분의 일을 잘 까먹는다는데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휴대전화의 메모장과 일정 관리에 적어 놓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먹는 것이 참 많다. 내야 할 공과금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 연체료를 낼 때도 있었고(그 이후 모든 것을 대부분 자동 이체시켜놓았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사실을 만나기 바로 전에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지인이 만나기 전에 미리 확인 연락을 해주었다.)


물건도 잘 잃어버린다. 보통 집안에서 잃어버리는 일이 대다수인데, 처음에는 잃어버리는 족족 불안해서 새로운 물건을 샀다. 여러 번의 반복적인 경험을 하며, 집안에서 잃어버린 것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로 어디선가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는 무언가를 잃어버려도 정말 급하지 않다면 일주일 정도의 간격을 두고 지켜보는 편이다. 사실 이건 내 건망증 탓만을 하긴 어렵다. 호두가 직립 보행이 가능해진 이후로 온 집안의 인테리어(?)를 계속 바꾸고 있으니까 말이다.


누군가와의 연락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 가장 힘들다. 누군가와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은 집중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말실수가 두렵고, 이를 위해 단어를 신중히 골라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다. 아이가 깨어 있는 동안은 나에게 계속 매달려서 놀아달라고 하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엉뚱한 일을 벌일 때도 있어서 누군가와 오랜 시간 대화하기는 참 어렵다. 특히 탁구처럼 서로의 메시지를 계속 주고받아야 하는 카카오톡은 난이도 최상이다.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점점 카카오톡과도 멀어지고 있다. 멀어진 지인과 친구도 많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그렇게 인간관계가 의도치 않게 하나둘씩 정리되며, 나의 상황이 어떠하든 믿어주고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구가 누군지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연락은 힘들어졌지만, 그렇게 하여 구별된 우정은 더 깊어졌다.


이제는 이렇게 내가 잃은 것들에 대해 좀 둔감해질 때도 되었는데, 예전을 생각하면 가끔 슬퍼진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조금씩 모든 것이 좋아질 수 있을까?


아이를 재운 밤. 이유 모를 헛헛함과 슬픔에 휩싸인다. 하고 싶은 일과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맴돈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온 정성을 다해 그 생명의 꽃이 활짝 피워질 수 있길 염원하고 있다.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내 자신이 가만히 앉아 있다. 지금은 아이를 키워야 할 시기, 아이에게 집중해야 할 시기. 잘 알고 있지만, 웅크리고 있는 내 뒷모습이 가끔 쓸쓸해 보인다.


아마도 나는 아이가 꽤 클 때까지도 아이가 자라는 기쁨과 가끔씩 울컥 쏟아지는 헛헛함과 슬픔을 동시에 계속 느끼며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왠지 쉬이 해결될 수는 없는 문제이니.


내일 아침이면 이런 몽상도 걷히고, 다시금 내 앞을 동당거리며 걸어 다니는 아기에게 다시금 내 영혼의 절반을 기꺼이 건넬 것이다. 낮에는 아기를 생각하고 밤에는 나를 생각한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나의 낮과 밤은 다르다. 앞으로도 나의 낮과 밤은 다를 것 같다. 그리고 그 괴리 속에서 가끔 긴 한숨을 토해낼 때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헛헛한 밤을 껴안는 일이다. 온 힘을 쏟아낸 뒤에 느끼는 이유 모를 허전함을 껴안고, 긴 밤을 참아낸다. 내일이면 다시금 찾아올 내 아이를 위해.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그 어떤 역할도 아닌 고유의 자아'였다는 사실을 나도, 아기도, 타인도 모두 잊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내가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것이 가장 슬프다. 잊는다는 것은 도전을 멈춘다는 것. 그러니 잊지 않기. 매일 밤마다 내가 내 자아를 부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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