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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ug 13. 2019

냉동 인간

저희 아기는 냉동 인간입니다. 장난이 아니고, 진짜로요! 제가 아기를 시험관을 통해 얻었거든요. 냉동 배아였던 저희 아기가 벌써 18개월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난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자신을 한없이 깎아내렸던 시간이었어요. 임신이 잘 되지 않는 것이 마치 질병인 것처럼 생각이 되고, 남들 앞에서도 괜히 자신감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시술은 꺼려져서 차마 용기를 못 내고 그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7년 차 때 시험관을 시도했지만, 난소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리 배주사로 난포를 키워도 나오는 난자는 3개에 불과했어요. 남들은 10개 이상 나와서 그 중에서 배아로 키우는 과정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것들만 시험관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3개 밖에 나오지 않아서 과연 끝까지 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막막하더라고요.


저의 불안과 달리 3개의 난자는 굳세어라 금순이처럼 끝까지 살아 남았고, 수정을 통해 3개의 배아가 되었어요. 기적이었죠. 선생님께서 저의 난소는 시험관 차수가 계속 늘어날수록 점점 더 상황이 안좋아질 거라고 예고하셨었거든요. 막다른 길목 같이 느껴졌는데, 3개의 배아가(제게는 꼭 3명의 아이 같은) 제 마음을 꼭 붙들어 줬어요.


시험관 이식을 하기 전에 배아 모양을 보면서 이상적인 모양을 고르거든요. 선생님께서 1등, 2등, 3등을 나누셨어요. 그중 2개를 몸에 넣으면서 1차 시험관 이식이 끝났습니다. 가장 예쁜 배아가 들어갔는데, 분명 잘될 거라 믿었죠.


10일 뒤에 피검사를 했을 때는 분명 유의미한 수치가 나왔지만, 며칠 뒤 피검 수치가 다시 떨어지며 화학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시험관 1차에 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란 것을 알았는데도 많이 좌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며칠 간의 방황 후 훌훌 털어내고 1달 쉰 뒤 남은 3등 배아를 이식하기로 결정했어요. 3등 배아는 냉동되어지는 과정에 성공해서 냉동 상태로 있었고요.


배아를 냉동하고, 해동하는 과정에서 잘못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들었습니다. 5일 동안 실온에서 살아남은 배아만 냉동할 수 있고(5일 안에 상당수 배아들이 성장을 멈춥니다), 살아 남은 배아들은 해동 과정도 잘 이겨내야 합니다. 가장 모양이 좋지 않았던 저의 3등 배아는 그렇게 냉동과 해동 과정을 기적적으로 잘 이겨내 주었어요.

그래도 모양이 별로라길래 사실 이식을 하면서도 기대를 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마음을 비워서인지 지난 번 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고, 피검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착상 성공! 7년 동안 처음으로 높은 임신 수치를 받아보았어요. 그때 제 기분은 좋았다기 보다는 얼떨떨해서 이게 현실인지 좀 분간이 안되었던 것 같아요. 어렵게 된 임신으로 제가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임신 과정 종종 피를 비치는 경우도 많았고, 배가 아플 때도 많았어요. 과연 이 임신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늘 공포에 떨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출산한 저희 아이는 3.4kg의 건강한 모습으로 세상에 와주었고,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지난 7년의 회한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이 키우기에만 전념했습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은 머릿 속이 새하얘져서 아이에게만 몰두하다가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는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났어요. 뒤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요즘에서야 조금씩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


오늘 문득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친구가 호두는 임신 과정부터 험한 과정을 많이 겪어온 아이잖아, 분명 강하게 잘 자랄 거야 라고 말해주어 호두의 '냉동 인간' 과거가 생각이 났답니다. 호두는 정말 시작부터 험난한 세월을 거쳐온 아이였습니다. 가장 못난 아이에서 가장 성공한 아이로 세상에 태어났어요. 호두가 크면 지금 쓴 이야기들을 꼭 해주고 싶어요. 네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을 뚫고 세상에 왔는지. 얼마나 존귀한 아이인지. 호두 앞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호두도, 저도 분명 상황을 이겨낼 힘을 얻을 것 같거든요.


지난 17개월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성장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매일 밤 뼈와 이가 자라는 고통을 잘 이겨내주었고, 저 또한 아이의 의식주를 해결해주기 위해 매일 밤낮을 참 애썼네요.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즈음 부터 매일 밤 감사 일기를 써왔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1년 동안 써왔더라고요. 제가 우울해지지 않았던 이유는 감사 일기의 힘이 컸던 것 같아요. 밤마다 제 오늘의 삶에 숨겨진 감사를 발견하고 나면 그래도 하루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기분 좋게 잠들었거든요.


매일 행복할 수는 없지만, 매일 감사할 수는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 중 무엇을 감사해야할지를 안다는 것은 내 삶을 분명한 긍정으로 바라보는 힘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힘이 저를 이제껏 버티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오늘 하루의, 지난 17개월의 감사를 돌아볼 수 있어 참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호두가 어떤 아이로 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에서 감사를 잘 발견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런 습관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니, 호두에게 분명 좋은 배움을 나누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제 마음에 들었던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행복한 밤 되세요라기 보다는 감사한 밤 되세요라고 인사하고 싶어요. 그리고 내일은 더 감사가 넘치시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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