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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ug 29. 2019

평범한 게 대체 뭔가요?

육아를 하며 점점 '평범함'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할 때 평범한 편인가? 잠은 평범하게 자나? 밥은 평범하게 먹나? 성장 발달은 어떻고? 내 안에서 계속 평범함의 단어를 습관적으로 찾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가 조금만 이상 행동을 해도 마음이 불안했다. 우리 아이가 평범하지 않으면 어쩌지?


지난 30여 년 평범함의 그림자 속에 숨어 살았다. 사실 내 삶을 자세히 뜯어보면 절대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삶이다. 그래도 가급적 평범한척하면서 튀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튀게 살면 모두에게 비난받고 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듯이 살았다. 연기는 그럴듯했다. 내 자신 조차 속였으니까.


육아를 하며 나의 민낯이 드러났다. 아이에게 무의식 중에 끊임없이 평범함의 잣대를 들이대는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참 놀랐다. 대체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사실 평범한 것이란 말은 상상 속 유니콘처럼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으며, 똑같은 삶도 없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몸과 환경을 부여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모두 다른 사건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그 사건의 해석 또한 서로 다르다. 겉으로 언뜻 보면 서로 비슷비슷하게 평범함이란 옷을 입고 살아가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참 다르다. 그저 안 다른 척 살고 있을 뿐인 것 같다.


내가 좀 더 속내를 알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10명 정도를 생각해보아도 모두 평범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자의 진한 색깔이 삶에 가득 스며들어 있다. 물론 그 친구들을 조금 더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말할만한 성향의 친구들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나는 가끔 부럽다는 소리를 듣고 산다. 그리고 나 또한 남들을 부러워하며 산다. 부럽다는 소리를 들을 때는 스스로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는데, 아마도 그 사람이 내 삶을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면 부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내 안의 어두움, 깊은 문제들을 수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달의 뒷면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류시화 작가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자신의 삶을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이가 있었는데, 신께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불행을 꺼내 자랑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부러운 이가 있으면 다른 이와 삶을 바꾸어 주겠노라고. 그러나 다른 이의 불행을 원 없이 구경한 주인공은 그 제안을 거부한다. 남들의 불행이 너무 불행해 보이기도 했거니와 자신의 불행은 그나마 익숙해진 불행이라 좀 더 낫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 일을 통해 누구다 다 자신만의 불행 속에 힘겨워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별거 아닌 듯한 이 이야기가 참 오래 여운이 남았다.


호두가 아토피를 극심하게 겪으며, 더욱 피곤해진 육아로 나는 남들을 부러워했다. 아토피만 없었으면 내 육아가 얼마나 편해졌을까. 피부가 깨끗한 아이들은 아토피 아이를 케어해주는 것보다는 조금은 나은 육아를 하겠지? 왠지 평범하지 않은 나의 육아가 괜스레 힘겨워졌다.


따지고 보면 육아가 쉬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 호두는 아토피가 문제이지만, 다른 아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모두 각자의 문제에 힘겨워하고 있다. 어느 책에서 나왔듯이 각자의 고통은 마음의 방을 꽉 채운다. 고통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 크든 작든 방을 꽉 채운다.


호두에게 미안해진다.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나마 호두에게 평범함의 잣대를 함부로 대었다는 것에 마음이 무겁다. 호두는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존재인데. 평범한 육아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라 호두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 육아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어야 했다. 그 삶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호두의 삶을 쥐고 흔드려 했다. 지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앞으로도 호두의 삶을 쥐고 흔들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을 기억하고 싶다.





평범함이 행복이고 평범하지 않음이 불행이 아니라, 평범의 기준이 나에게 있으면 행복하고 남에게 있으면 불행한 거 같다. 평범함의 의미를 자기 삶의 맥락에서 똑 부러지게 규정하는 은수연 씨에게서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보긴 어려웠다.                                                                                       -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중에서





평범의 기준은 호두와 나에게 있다. 내 삶의 맥락에서 평범함이란 단어의 뜻을 찾아내야 한다. 호두가 호두다울 수 있는 것이 가장 평범한 삶이 아닐까. 호두가 부디 평범함의 의미를 자기 삶의 맥락에서 규정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런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겠지.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는 육아가 참 어렵게 느껴지면서도 육아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다 보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시간을 지혜롭게 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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