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시절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특이하고 신비로우며, 앞으로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시기라 생각한다. 뇌과학 책을 읽으니 십대 시절은 갑자기 뇌가 큰 평수로 확장 공사를 하느라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라 한다. 내 기분이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고, 감정은 자꾸만 널을 뛰고, 초등학생도 안 할 유치한 생각을 하다가도 대학생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급속히 자라나는 신체와 왠지 그보다 더 빠르게 자라고 있는 것 같은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마음의 감각이 가장 활짝 열려 있는 시기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십대 때만큼 모든 것에 대해서 열린 사고를 가진 적이 있던가. 그래서 십대 때 내가 했던 많은 경험과 생각들은 지금까지도 여파가 큰가 보다. 그때 가졌던 좋은 생각들은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의 기초가 되어주었고, 그때 가졌던 편견과 아픔들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다시 회복해야 할 무언가가 되고 있다. 그중 여전히 나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경주마 의식'이다.
나는 욕심이 많았다. 욕심이 많다 보니 공부를 무척 잘하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갑자기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고,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늘 쫓기는 마음이 들었다. 놀고 있어도 아 이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공부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 입이 바짝 말라왔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그렇게 마음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누구도 이런 삶은 너를 갉아먹을 것이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의욕적인 아이는 그저 칭찬받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스스로를 옥죄는 잘못된 삶의 방식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하염없이 계속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을 갖게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은 계속되었다. 끝없이 경쟁의식에 시달렸고, 자유시간이 생길 때마다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펑펑 놀고 있는 이 시간에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은 여전히 나에게 들러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좋을 때가 많았다. 그것은 내 삶의 '보상'이 아니라 또 다른 '올무'가 되어 나를 계속 옭아맸다. 더 좋은 결과를 위해 나는 또 다른 경주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불타는 경주마의 질주를 멈춰 세운 것은 아기였다. 아기를 낳은 뒤 나는 내 모든 시간을 아기에게 주게 되었다.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아껴가며 써오던 내 시간을 통째로 누군가에게 주는 경험은 참 신기했다. 억울하기도 했고, 갑갑하기도 했다.
아기와의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다. 잔잔하고 평온한 시간이었다. 몸은 아이를 돌보느라 바빴는지 몰라도 마음은 강물처럼 조용히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이제까지의 삶 전반전을 자꾸만 자체 점검하게 되었다.
숨 쉴 틈 없는 경쟁이 빼곡히 들어찼던 삶이다. 많은 성취는 있었을지 몰라도 성취를 이루어내느라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채찍질을 했던 건 아닌가. 스스로의 몸에 새겨진 채찍의 상처를 돌아보며 내가 내 자신을 참 매몰차게도 몰아세우며 살아왔구나 생각했다. 잘한다 잘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잘해온 게 아니었다. 내 몸 상하면서까지 잘하는 건 절대 잘하는 게 아니다.
여전히 내 몸은 경주마로서의 삶을 기억한다. 아기가 잠을 잘 때, 누군가 아기를 돌보아 줄 때마다 갑자기 내게 생기는 자유 시간 동안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해야 이 시간이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초조해진다. 오늘 아기가 낮잠 잘 때 자꾸만 초조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눈치채고 놀랐다. 아, 여전히 내 몸은 예전의 삶을 기억하는구나.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떤가. 좀 허비하면 어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저 내 중심일 뿐인데.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하는 믿음, 사랑, 소망을 잘 붙잡고 있다면 조금 더디게 가든 멈추어 있든 상관없다.
육아를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심지어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스스로를 떨쳐 버리고 싶다. 경주마로서의 과거를 온전히 씻어내고 싶다. 성취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두는 삶을 살고 싶다. 성취와 달리 성장은 많은 경험을 두루두루 포용한다는 좋은 장점이 있으니까.
별다른 특별한 일 한 거 없는 하루지만, 아이와 놀아주고, 삼시세끼 챙겨주고, 설거지 안 밀린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졌던 평범한 과제를 잘 마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이러한 평범한 시간들이 모여 아이는 자라고, 집안일의 경험은 늘고, 자라난 아이와 늘어난 경험만큼, 그리고 늘어난 주름만큼 삶의 여유도 조금씩 되찾아 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내 삶이 경주마가 아닌 여행하는 말의 삶이길 소망한다. 정해진 목적 없이 느릿느릿 하루만큼 가야 할 길을 성실히 가며, 오늘 보았던 풍광과 만났던 사람으로 인해 행복한 삶이었으면 한다. 좀 더 멋진 성취를 가진 삶이 더 낫지 않겠냐 속삭이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이를 위해 늘 기도하고 노력하며 마음을 잘 지켜 나가야겠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