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의 사랑

by 빗소리

연휴의 마지막 날. 지친 몸으로 소파와 하나가 되어 누워 있었다. 글도 쓰고, 책도 봐야지 마음으로만 되뇔 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친절한 방송사는 연휴 마지막 밤까지도 특집 영화를 내보이고 있었다. 아이 낳은 뒤 영화관을 거의 가지 않았기에 텔레비전에서 하는 영화가 내게는 모두 신작 영화 같았다. 남편은 집에서라도 열심히 영화를 챙겨봤기에 모두 본 영화였다.


무엇을 보려냐는 남편의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했다. 세 개의 영화를 하고 있었는데, 모두 봤으니 재밌는 것을 잘 고르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남편이 고른 영화는 그중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증인'이라는 영화였다.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증인인 자폐아와 변호사의 이야기였다. 평범해 보이는 법정 드라마 같았다. 10분 정도 보다가 왠지 재미가 없어서 남편에게 그냥 다른 거 보자고 말했다.


"왜? 재밌는데."


왜인지 남편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난 이미 영화에 흥미를 잃어서 반은 스마트폰을 하며 불량하게 보고 있던 중이라 채널을 바꾸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드러누워 쭉 불량하게 시청했다. 그러다 잠들 계획이었다.


잔잔한 전반부와 달리 영화는 점점 등장인물의 감정이 고조되며 절정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자폐아와 변호사가 나누는 우정 이야기도 좋았고,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찾아오는 그 둘 사이의 위기, 사건의 반전 등 점점 흥미로운 요소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김향기 배우의 인상이 선해서 좋아했는데, 자폐아 연기를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다.


주인공 지우(김향기)에게 자폐아의 증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를 들이대며 마구 상처 주는 변호사와 학교까지 찾아와 위협을 가하는 범인. 이런 상황에서 지우가 당연히 두 번째 공판에서는 증인으로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지우는 엄마에게 증인으로 나가겠다 말한다. 진실을 밝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자폐로 인해 그럴 수 없으니 진실을 밝히는 증인이라도 되고 싶다고.


영화는 완벽히 내 취향이었다. 마지막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까지도. 나는 '결국 승리하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비록 고초를 겪을지라도 선한 사람이 자신의 뜻하는 바를 이루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장애라는 편견으로 인해 증인으로 서기가 어려웠을지라도 결국 지우의 증언은 진실을 바로 잡아주고, 지우 스스로에게도 진실함이 가진 힘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초반부에 하품하며 지루해하는 나를 보면서 쉽게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정자세로 뚫어지게 영화를 쳐다보는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득의양양한 시선을 느끼며 그가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것을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 눈치챘다.


남편은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말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긴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 표현도 별로 하지 않는다. 결혼 전까지는 무뚝뚝한 사람이 이상형이었으나, 막상 결혼해보니 무뚝뚝한 사람과 사는 것이 참 힘들었다. 답답할 때가 많았고, 다정한 부부들이 부러웠다. 빠르게 늙어 50대 부부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된 부부 같이 그렇게 미지근한 사랑을 하는 걸까?


그의 사랑은 무색무취의 사랑 같았다. 대체 저 사람은 내게 관심이나 있을까 싶지만, 남편은 의외로 내게 꽤 관심이 많은 듯했다. 함께 한 12년 간의 시간이 주는 지식으로 인해 나도 모르는 나의 취향까지도 알고 있었고, 그런 부분을 세심히 챙길 때가 종종 있었다. 남편이 골라오는 내 물건은 취향에 잘 맞았고, 물건뿐만 아니라 그가 나를 위해 고르는 대부분의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렇게 나에 대해서 자신이 잘 안다는 사실을 '사랑해'의 대체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결혼을 한다는 것. 결혼의 시간이 쌓여간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 점점 빛이 바래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점점 달라지는 사랑의 색깔을 받아들이고, 오래가는 사랑은 집밥처럼 그렇게 연한 색의 사랑임을 넉넉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연애할 때 자신의 원래 색보다 더 진하게 힘을 내어 색을 쥐어 짜내던 남편의 사랑도 멋진 사랑이지만, 이제는 스스로 편한 채도와 명도를 찾아 오래도록 색을 내어도 힘들지 않은 그의 사랑도 멋지다.


때론 그의 사랑이 너무 무색무취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러나 가만가만 마음으로 들여다보면 옅게 피어나는 그의 색채를 느낄 수 있을 때가 있다. 예전에는 남들도 다 알아볼 수 있는 색이었는데, 이제는 나만이 눈치챌 수 있는 아주 옅은 색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색인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사랑받는 아내라 생각한다. 비록 그 사랑의 행동이 크지 않고, 나만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소소한 사랑일지라도 말이다. 남들에게 한껏 자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 부부만이 소소히 누리는 이 사랑의 크기가 난 좋다. 어쩌면 그런 것을 좋아하기에 남편을 짝으로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화해하고 미워했다가 또 즐거워했다를 반복할 테지만, 서로의 마음에 담긴 진심에는 귀 기울이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 아기를 돌보느라 지치는 시간 속에서도 서로를 향했던 작은 배려들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부부가 되길. 그리고 그 배려가 언젠가 노년을 맞게 될 우리 부부의 단단한 신뢰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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