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아기가 밤잠 들 시간에 출발한 터라 아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어두운 창밖을 보며 내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르릉 쾅쾅 뱃속이 요동쳤다. 친정에서 출발하기 전에 먹은 치킨이 문제를 일으킨 듯했다. 적당히 먹고 싶었으나 남으면 버려야 하는데 아깝다는 엄마의 말에 욱여넣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부글부글부글. 하루 종일 아이 쫓아다니느라 지쳐 있던 내게 찾아온 꿀 같은 자유 시간을 채 맛보기도 전에 몸속 전쟁이 시작되었다.
"오빠, 가장 가까운 휴게소가 어디야? 나 화장실을 가야 할 것 같은데."
내 뱃속에서는 전쟁이 절정으로 다다르고 있었으나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9년 결혼 기간의 짬밥이란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남편의 착한 성격 때문일까. 최대한 심각하게 말하려 하지 않은 나와 달리 남편은 내 말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하긴 돌아보면 내가 남편과 차를 타는 동안 화장실 때문에 내려 달라는 소리를 거의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보통은 화장실 문제를 준비성 있게(?) 잘 해결하고 차에 올라타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뒤로는 내 몸의 상태를 돌볼 여유가 줄어들어서인지 화장실을 못 챙기는 날이 늘었다. 이 대목을 쓰며 조금 서글퍼졌다. 시간적으로는 챙기려면 챙길 수 있었겠지만, 그만큼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단 이야기이니까.
남편은 말없이 액셀을 밟았고, 차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평소 조심성 있게 운전하는 남편의 모습은 어디 가고 내 앞에는 분노의 질주 주인공이 앉아 있었다. 스마트폰이라도 하며 내 몸의 괴로운 감각(?)에 집중하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스마트폰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더더욱 괴로운 감각에 집중이 되었다. 최단 거리의 화장실을 찾는데에 혈안이 된 남편과 뒤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외치고 있는 나. 차 안은 아이러니 하게도 매우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우리 각자의 괴로움이 빼곡히 공간을 채우고 있는 꽉 찬 조용함이었다.
남편은 차를 고속도로 졸음 쉼터 주차장에 영화처럼 끼익 재빠르게 주차했고, 나는 감사하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총알 같이 문을 열고 질주했다. 화장실에서야 비로소 평안(?)을 맛보고, 산다는 것은 왜이다지도 드라마틱한 것일까 잠시 생각한 뒤 손을 씻고 나왔다.
"고마워."
말 없는 남편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금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였다. 이번에는 안정감 있는 엔진 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마음도 안정권으로 접어들었나 보다.
무뚝뚝해서 말이 없고, 감정 표현도 잘하지 않는 남편과 살다 보면 마치 벽을 마주한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가끔 그 벽이 유리창이 되어 남편의 속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오늘 같은 날이 그런 때이다.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불만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고, 그저 힘차게 액셀을 밟는 것으로 나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남편의 묵직함이 좋다. 생색내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겸손함도. 그의 말 없는 위로는 몸의 이상 감각으로 괴로운 내게 그 어느 말보다 든든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
매일의 전쟁 같은 육아로 인해 싸워야 할 일이 지뢰밭 같이 널려 있는 어린 아기 부부이지만, 가끔씩 지뢰밭에서 발견하는 꽃을 보며 그가 내 남편임에, 그리고 내 아이의 아빠임에 감사해본다. 화장실 문제로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는 참 이상한 아내이지만, 나는 이런 사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사랑이 꽤 힘이 세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오늘 갑자기 생긴 남편 직장의 송별회로 인해 나의 마음은 어제의 사랑을 잊고, 분노로 충천해 있음을 알리며 글을 맺어 본다. 내 사랑은 이리도 변덕이 죽 끓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