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까운 것을 어찌할까

by 빗소리

지난 일요일, 교회 다녀온 뒤 엄마와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했다. 나뭇잎이 점점 알록달록 물들고 있었다. 아직은 낮에 덥기도 하고, 가끔 매미 울음소리도 들려서 가을이 참 더디 온다 싶다가도 이렇게 어김없이 물드는 나뭇잎을 보면 자연의 성실함이 경이롭다.


"가을이 아까워."


물든 나무를 보면서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나이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 깊이 느낀다는 것일까? 최근 들어 엄마는 가을이 아까울 정도로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바삐 흘러가서 더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 한다. 그래서 남은 가을날을 만끽하기 위해 주말마다 산을 가셔야겠다 하셨다.


"엄마, 당분간 나 놀러 오지 말라는 거구나?"


매일 글을 쓰며 작가 지망생을 꿈꾸는 딸인데, 왜 이다지도 낭만이 없을까. 가을의 낭만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낭만 파괴의 대답이었지만, 나는 엄마의 심중을 정확히 맞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이지만, 잠시 잠깐이면 사라질 가을날을 양보할 순 없지. 엄마는 당분간은 놀러 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으셨고, 가을 단풍을 눈으로 담을 생각에 부풀어 오르신 모습이었다.


사실 나도 엄마처럼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도 아깝지만 나는 가을볕이 참 아까웠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가을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이 볕이 너무나 아까워 아기를 데리고 어디든 가고 싶어 졌다. 그렇게 호두와 손을 잡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볕을 만끽했다. 지나가는 풀을 잡아채고, 비 온 뒤 웅덩이 진 미끄럼틀을 타자고 우기는 막무가내 호두이지만, 그렇게 호두와 가을볕을 누리다 보면 이 볕과 호두의 아기 시절을 최대한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아깝다. 가을이 가는 것도. 가을볕의 느낌이 점점 달라지는 것도. 호두가 크는 것도. 이 아까운 것들을 어찌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러본다.


멈추지 않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가끔 아연실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고 싶던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느낀 감정만큼은 내 마음속에 켜켜이 남아 있다. 어두운 날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이 뜨듯해지는 그런 기억으로.


사진처럼 남은 오늘의 호두와 가을볕. 내가 사랑했던 날들이 오래오래 내 삶을 비추어 주는 등불로 남아주길 바래본다. 그 등불이 모여 노년의 내 길을 밝혀주길. 사랑했던 기억과 사랑받았던 기억. 언젠가 냉랭해지는 호두와의 순간에서도 그 기억이 호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덧 입혀주길.


그렇게 나는 아까운 가을볕을 미래로 미래로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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