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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12. 2019

친절해진 남자들

어느 날 갑자기 내 주변의 남자들이 친절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주변의 남자들이 친절해졌다. 먼저 걸어가 문을 열어주기도 하고, 의자를 가져다 주기도 하며, 웃으며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로 바꾼 화장품 덕분일까. 내 숨겨진 매력이 이제야 드러나는 것일까. 나를 보며 웃는 남자들을 보니 내 마음도 함께 부드러워진다.


기분 좋은 변화다. 그 남자들의 시선 끝에 비록 다른 여자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막상 그 여자는 남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남자들의 애정 어린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 여자가 내게 외친다.


"까자!(과자)"


요즘 호두의 성수기다. 작은 몸을 이끌고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호두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사랑스럽다. 누군가에게는 자식을, 누군가에게는 조카를, 또 누군가에게는 손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인가 보다. 그중 특히 아빠뻘 되는 아저씨들의 반응이 가장 뜨겁다. 가장 열렬한 반응을 하는 남자들이 내게 거는 말은 한결같다.


"우리 딸도 이만해요."


공감이란 이런 것일까? 호두와 비슷한 시기의 딸을 가진 아빠들은 우리 모녀를 볼 때 매우 도와주고 싶어 한다.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고, 한 손으로는 식탁 의자를 옮기는 나를 위해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식탁 의자를 옮겨 주던 분. 그분 또한 이만한 딸의 아빠였다. 자신이 없는 어딘가에서 아이를 챙기며 없는 힘을 끌어 모아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아내를 생각했을까? 고사리 손으로 출근하는 아빠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던 딸아이도 생각났겠지. 왜 갑자기 착한 척이냐며 야유를 보내는 동료들의 핍박(?)에 빨개진 얼굴로 밥을 먹던 남자분을 보며 흐뭇해졌다.


우리 남편도 밖에서 호두 나이 또래의 아이와 엄마를 보면 도와줄까? 말 없는 남편이라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다. 하지만 착한 남편의 성정과 타고난 딸 바보 성향을 볼 때 분명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얼른 달려갈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족은 건강한 공감을 갖게 하는 존재 같다. 우리는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를 볼 때 아빠를, 엄마를, 남편을, 딸을 생각하곤 한다. 나 또한 엄마께서 과거에 몇 년 동안 야구르트 일을 할 때 추운 겨울에 야구르트를 파시는 아주머니를 보면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뭐 하나라도 사드려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지곤 했다. 엄마께서 청소 일을 하실 때는 직장에서 청소하시는 분께 조금이라도 더 다정하게 대해 드리려 노력하게 되었다. 나의 가족 같이 느껴진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가족과 나누던 깊은 유대감을 울타리 넘어 비슷한 누군가에게도 선뜻 건네는 일. 가족이 떠오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떤 구절인지 정확히 외우지는 못하지만, 나이 드신 남자분은 나의 아버지 같이, 나이 드신 여자분은 나의 어머니 같이, 나이 어린 남자분은 나의 동생 같이, 어린아이들은 나의 자식 같이 대하라는 내용의 구절이다.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나와 연결된 가족을 떠올리며 대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태도가 따뜻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아기로 인해 엄마, 아빠의 공감 능력이 더 커지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더 커진 공감 능력은 내 아기뿐만 아니라 남의 아기를 보는 눈도 바꾸고, 그렇게 생겨나는 친절이 서로의 벽을 허물게 되는 것 같다. 왠지 남자분들이랑 있으면 어색하고 어려웠는데, 아이와 함께 하다 보면 그분들의 숨겨진 따뜻한 면모를 볼 수 있어 좋다.


친절한 사람들. 가족을 보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사랑과 배려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더 많은 것을 나누고 교감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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