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집은 참 가난했다. 아빠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몸이 약한 엄마께서 힘들어도 일자리를 항상 구하셔야 했다. 엄마는 다양한 비정규직의 일을 하였는데, 여러 일 중 내게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가정부(현 가사도우미) 일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가사도우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못하였고, 드라마에서 가정부를 하대하는 장면들도 많이 나와서 그랬다.
가끔 엄마께서 그때를 추억하면서 말해주시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내게 아픈 가시 같이 느껴졌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그중 유독 깔끔한 집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그 집의 아저씨가 깨끗함에 대한 수준이 높았다. 그래서 가사도우미를 자주 교체하는 집이었다. 엄마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그 집에 들어갔고, 평소처럼 일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아는 엄마는 원래 그런 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과하게 행동하거나 안 보일 때 불성실하게 행동할 분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사시는 분이었다. 남의 칭찬을 바라기보다 최선을 다할 때의 마음이 좋아서 그렇게 사셨다.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그 집 청소도 하지 않으셨을까.
어느 날 그 집 아저씨가 한 말을 아주머니께서 전해주셨다 한다. 아저씨는 장롱의 작은 문양 하나하나까지도 먼지가 있는지 살펴보곤 하는데, 그곳까지 먼지가 없게 청소한 분은 엄마께서 처음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나에게 자랑스레 하신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마음이 미어졌는지 모른다. 너무 높은 수준까지 바라는 그 아저씨의 행동이, 그곳까지 청소하며 한 번도 허리 펴지 못하고 일했을 엄마의 모습이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라도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우리 집은 내 나이 19살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갈길을 잃었다. 두 분 월급을 합쳐도 가난했던 우리 집인데 말이다. 엄마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자신의 어두운 미래로 인해 하나님을 등졌다. 등질뿐만 아니라 철저히 원망하고, 미워했다.
아직 더 키워야 할 자식들이 있었기에 엄마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작은 돈으로 이런저런 사업을 벌여 봤지만, 하는 족족 모두 실패했다. 결국 다시 비정규직 일로 돌아가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버셨다. 그래도 엄마는 기본적으로 성실함과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을 겸비한 분이었기에 어느 직장에 가셔도 환영을 받으셨고, 생활을 이어갈 만큼은 버셨다. 다행히 나도 졸업 후 곧바로 정규직 직장을 다니게 되어 집안은 점점 안정되어 갔다.
엄마는 어쩌면 엄마의 생애 마지막 직장이 될지도 모를 곳으로 2년 전 이직하셨다. 공공기관의 청소도우미 일이었다. 또 청소 일이냐는 내 마음과 달리 엄마의 주변 분들은 정말 많이 부러워하셨다고 한다. 은퇴도 늦게 할 수 있고, 비정규직이어도 특별한 문제가 없이 성실하게 일한다면 계속 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일자리였다. 60대 가까운 나이의 여성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진다는 건 그 세대에서는 꽤 부러움을 살 일이었다. 엄마는 새 직장을 무척 마음에 들어하셨고,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일하셨다. 노후는 여전히 불안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셨다.
그런 엄마께서 얼마 전 건강검진을 하셔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야 엄마가 조금 어깨 펴고 사시는 것 같은데, 건강검진에서 뭐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에 말씀을 해주신 상황이라 나는 한 달 동안 열심히 기도했다. 엄마께서 신앙을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교회에 나가신 지 몇 년 되지 않으셨는데, 엄마의 희망을 꺾지 말아 주시길 기도했다. 남편 없이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엄마의 삶이 이제 좀 펴지려 하는데, 그 날개를 부디 보호해주시길. 그렇게 나는 엄마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시간이 지나고 엄마는 건강검진을 하셨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가 걸렸는데, 엄마께서 전화하실 때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받곤 했다. 2주 뒤 검진 결과 엄마는 큰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절로 감사 기도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엄마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참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나는 엄마께서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 돌아가실 수도 있겠단 생각을 자주 했다. 그만큼 엄마는 몸이 약하셨고, 그 약한 몸을 끌고 일하시느라 병원 신세를 자주 지셨다. 그렇다고 엄마께서 지금 강골이 되신 것도 아니고 여전히 여러 병으로 병원을 다니시지만, 엄마의 건강을 크게 위협할 만큼 큰 병은 없었다. 직장에 다니실 수 있을 만큼의 건강이 늘 유지되었고, 비정규직이어도 엄마의 직장 자리는 끊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엄마는 그렇게 느끼시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엄마를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은 항상 엄마와 함께 셨다. 비록 엄마의 삶은 쉽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엄마에게 건강과 직장의 축복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건강과 직장의 축복을 허락하셨다. 엄마는 본인의 삶에 대해서는 고개를 숙이실지라도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당당하셨다.
엄마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면 참 비극적인 순간이 많은 삶이었을지 몰라도 넓은 시각으로 보면 엄마는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나의 기도는 엄마의 복을 바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엄마께서 부디 자신에게 주어졌던 많은 복을 깨달으시고 남은 생애 동안 하나님께 받은 복을 돌려드리는 삶을 사실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엄마를 위한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미심쩍음도 풀어주셨다. 나는 줄곧 엄마의 마지막 직장은 왜 또 청소일이었나 하는 생각을 품어왔다. 옛날 가사도우미 일이 내게는 꽤 깊은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여러 은사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가장 큰 은사는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었다. 만약 엄마께서 사업 자금만 풍부하셨어도 편집샵 일을 하면서 꽤 성공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삶에 남는 나만의 아쉬움이었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서 기도 중 말씀하셨다.
"나는 네 엄마의 은사 중 하나가 주변을 깨끗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네 엄마는 청소를 할 때 행복해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그런 네 엄마의 은사를 통해 기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 윈윈이란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정말 그럴까. 엄마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 이후 엄마와 시간을 보내다 엄마께 이런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
"엄마, 엄마 직장의 사람들은 참 행복하겠다. 엄마는 진짜 청소를 잘하잖아. 그 사람들은 얼마나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까? 복 받은 사람들이네."
엄마는 예상치 못한 딸의 말에 당황하시면서도 좋은 기분을 숨기지 못하셨다.
"지나가는 여직원이 화장실이 어떻게 이렇게 매일 깨끗할 수 있냐며 물어보더라."
비록 나의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엄마의 삶이 아쉽긴 하다. 그래도 엄마께서 행복해하시고, 하나님은 엄마보다 더 행복하시니 두 분의 행복이면 됐다 생각한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의 눈과 다르니 말이다. 직업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실 것이고, 하나님 보시기에 엄마는 참 마음에 드는 딸일 것이다. 엄마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니까.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랴. 설사 내가 딸이라 할지라도 나는 엄마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삶의 무게를 재실뿐이다. 엄마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하나님은 그런 엄마를 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다. 다만 이제 하나님의 짝사랑을 좀 눈치채고, 엄마도 하나님께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보다 앞서 간 엄마의 삶을 보며 생각한다. 난 엄마 딸이니까 분명 끝까지 이 믿음의 경주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삶 앞에서 늘 자신의 최선을 다해왔던 그런 엄마의 딸이니까. 엄마가 보기에 그리고 세상이 보기에 초라해 보이는 엄마의 삶이 내게는 눈부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