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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ug 02. 2021

뜻밖의 우정

1. 가까운 친구가 가까운 친구가 되기까지

 

예전에 나는 브런치에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에 대하여 글을  적이 있다. 상처 받는 것이 두렵고, 혹여나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친구를 사귀게 될까  두려웠다.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어도  적당거리를 두며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지 않곤 한다. 그런데 2019 12, 나에게 새로운 사람이 찾아왔다.


왜 하필 나는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가는 시점에서야 아랫집을 생각해냈을까? 그동안 우리 아이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아랫집을 힘들게 했을지가 2년이 다 될 때에야 생각나다니...... 나의 무심함을 탓하며 늦었지만 정말 사과하고 싶어서 딸기 한 박스를 들고 아랫집을 찾아갔다. 내 기억으로는 아랫집에 내 나이 또래와 엇비슷한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색함과 떨림을 안고 21개월 딸아이와 아랫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 사람을 보며 깜짝 놀랐다. 이제 고작 4~5개월은 될 법한 아기를 여자분이 안고 계셨던 것이다. 정말 나의 무심함이란.........


한참 뒤 초인종을 눌렀던 시점을 언니는(그 아랫집 여자분) 이렇게 회고했다. 아기를 낳고 무료하고 외로운 시간 가운데 내가 갑자기 딱 나타났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딸기를 받아 들고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언니는 나에게 연락처를 물어봤다. 마침 전화를 안 가져왔기에 언니는 나에게 종이에 본인의 연락처를 적어 주셨다.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들고 왔다. 책상 위에 놓인 연락처 종이를 바라보며 나는 선뜻 내 전화에 번호를 저장할 수도 없었고,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언니는 바로 아랫집 사람. 거리로 치자면 반경 5m 안에 사는 사람이다. 그렇게 거리가 가까운 사람과 내가 친해졌다가 만약 불미스러운 일로 불편해진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언니와 적당히 어색한 사이로 지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아닐까? 그래, 기도해보자. 하나님은 아시겠지. 그 문제를 두고 며칠간 기도했다.


며칠 있다 언니가 가져다줄 것이 있다며 집 앞에 무언가를 놓고 갔다. 그때 하나님께서 명확한 마음을 나에게 주셨다. 이 사람과 좀 더 친해져 보자는.


그 이후로 언니와 나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선물을 하기도 하고, 집에 놀러 가기도 하며 친해졌다. 언니와 친해지며 알게 된 사실은 언니가 하나님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척 따뜻하고 용감한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을 나의 친구로 보내주신 것이다.


언니와 함께 지낸 20개월의 시간이 참 행복했다. 언니는 관계에 있어서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고, 적당한 선을 감지하는 센스도 가지고 있었다. 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만나고 난 뒤에 내가 많은 배려를 받았구나 하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고는 하였다.


과분한 친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에게 세상은 정말 좋은 사람이 많구나, 사람으로 인하여 삶은 참 다채로워지는구나를 알게 해 준 언니가 있어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가까운 친구가 가까운 친구가 되기까지.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친구가 정서적 거리까지 가까운 친구가 되기는 참 어렵지 않을까. 내 삶에서 그런 경험을 시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2. 나의 70대 친구


이미 나의 폐쇄성에 대해서는 여러 번 글에 밝힌 바 있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주변 이웃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에 대해 어려움이 많다. 주변 이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이다.


옆집에는 70대 할머니가 혼자 사신다. 할머니가 이사 오신지는 5년 정도 된 것 같다. 오며 가며 엘리베이터에서 어쩌다 할머니를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드리곤 했지만, 딱히 할머니와의 교류는 없이 지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는데, 할머니가 토마토를 선물로 가져오시며 아이 낳은 것을 축하해주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기라서 인지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하셨다. 그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를 만날 때는 늘 아이와 함께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늘 진심 어린 얼굴로 말씀하셨다.


"나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봐! 진심이야!"


내가 볼 때는 진심이 아닐 법한 말을 저렇게 확신에 찬 얼굴로 해주시는 할머니라니! 할머니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감탄할 만큼 예쁘진 않았는데, 할머니께서 매번 아이를 만날 때마다 감탄해주시니 엄마로서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 정말이야!"


할머니의 멘트는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내용은 비슷했다. 우리 아이가 정말 예쁘고 최고라는 말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데도 아이가 할머니에게 조금씩 호감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예의 바르신 분이었다. 할머니들 중에는 무례하게 본인보다 어린 사람의 삶에  놔라  놔라를 하시거나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할머니는 나를 만나면  예의를 갖춰 대해주셨다.


두려움이 많은 나이지만 저렇게 괜찮은 성품의 할머니라면 한 번쯤 할머니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가졌다. 마침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다녀온 날 할머니를 엘리베이터에서 딱 만났다. 마음이 통했던 건지 할머니가 갑자기 내 얼굴을 보더니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올래요?"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신난 아이와 함께 할머니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갔다. 아들이 두바이에 산다는 할머니에게 두바이 특산품도 얻어먹고, 그밖에 신기한 간식을 많이 얻어먹었다. 신난 아기는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할머니는 아이에게 피아노도 가르쳐 주시고, 세계지도도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할머니와 우정을 쌓아가다 보니 이렇게 친해지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생겼다. 나에게 걱정이 생겼다는   관계가 그만큼 소중해졌다는  의미한다. 나는 70 친구를 사귀게 되며 처음으로 친구의 죽음을 걱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앞을   없는 것이고,  이상한 이야기지만 할머니보다 내가  앞서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들을 최대한 기쁘고 감사해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와 나에게 허락해주신  시간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며 할머니와의 우정을 쌓아가야겠다.


옆집 아줌마가 너무 마음에 든다는 할머니에게 두바이에 사는 아들아줌마 주라며 이탈리아산 무당벌레 비누(엄청 유명한 거란다) 주셨다 한다. 무당벌레 비누로 몸을 씻으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가 있어  삶은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을. 할머니가 있어  아파트가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3. 나의 수다쟁이 친구


우리 교장 선생님은 정말이지 투 머치 토커이시다. 주장도 강하시고, 투 머치 토커이시기에 꽤 악명이 높으시다. 내가 교장 선생님과 일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이 나 대신 나를 엄청 걱정해주었다. 사실 나도 겁이 나서 다른 학교로 전근 신청을 했었지만, 점수가 부족하여 전근 신청이 무산되었다.


막막한 마음으로 3월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교장 선생님은 투 머치 토커이셨고, 내가 업무를 들고 결재를 맡으러 교장실에 갈 때마다 교장 선생님의 반대 주장에 힘 없이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암울할 1년을 생각하며 3월은 많이 춥고 외로웠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내게 선하신 분이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베풀어 주시는 분인데.... 도대체 왜! 왜! 왜! 이런 분을 만나게 한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교장 선생님에 대한 불확신으로 내 마음이 갈대 같이 흔들렸다.


그렇게 시간이 하루하루  흘러갔다. 나도 나를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는 훌륭한 방청객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1시간에서 2시간이 넘어갈 때도 있는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때론 박장대소를 하며 오히려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 시간을 나름대로 즐겼다. 교장 선생님이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왠지 얘 좀 특이하네 하는 눈빛을 가끔 보이셨다. 시간이 오래될수록 딴생각을 하거나 지루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많을 텐데, 내가 오히려 본인 이야기에 깔깔대고 웃고 질문을 추가하기도 하니 얼마나 이상했겠는가.


내 마음은 그랬다. 어차피 정색하며 내가 이 자리를 뜰 수 없다면 그냥 이 시간 동안 이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생각보다 교장 선생님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많은 것들을 연구하고 공부하신 분이기에 여러 분야에 전문가셨다.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게으른 내 자신과 쉬운 것만 찾는 나의 속물근성이 뜨끔하기도 했다. 공부를 너무 좋아하셔서 잠도 제대로 안 자고 공부를 하시다가 눈이 안 보이시는 일까지 생기셨다는 대목에서는 너무 가슴이 아파 뭉클했다. 생각해보니 저렇게 1~2시간을 남에게 자신이 배운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할 정도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 것인가.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긴 했다.


나의 장점 중 또 하나는 수용성이 좋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강한 주장을 가지신 분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주장이 무척 합리적이었고 교육적이었다. 내가 볼 때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의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정말 교육적이지 않고 쓸모없는 일이라면 반기를 들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교장선생님은 어쩔 때 보면 나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의견을 낼 때가 많았다.


교장선생님은 두 가지 면으로 참 힘든 분으로 유명하신 분인데, 나에게는 그 두 가지(강한 주장, 투 머치 토커)가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승진을 준비하고 있어서 관리자와의 관계 맺기가 중요한데, 오히려 내가 정치를 해야 한다거나 아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그 관계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장선생님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장선생님은 그저 내가 내 일을 성실히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시는 분이었다.


하나님은 얼마나 나를 잘 알고 계시는가. 아부와 정치 쪽에는 관심도 없고 관심 갖고 싶지 않은 나의 성정을 잘 아시고, 나에게 딱 맞는 상사를 보내주시는 분 아닌가. 1학기가 지난 시점에서야 나는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딱 맞는 상사라는 걸 알게 되었고, 점점 그분과의 대화를 의미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


1년 동안 친구들보다 교장선생님과 가장 대화를 많이 하게 될 줄이야. 그래도 앞서 사신 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과 대화를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나의 수다쟁이 친구를 오해한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친구를 점점 받아들이게 된다. 하나님은 내 주변의 많은 이들과의 조화 속에서 나를 점차 성장시키신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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