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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ug 01. 2021

여름, 그리고 뱀 10마리

1. 손이 흐르는 대로 글쓰기


브런치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반 정도 된 것 같은데, 왠지 나는 아직도 브런치에 글쓰기가 어렵다. 오히려 자주 가던 카페에 글을 쓸 때는 친구와 일상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듯 글을 써서 전혀 어렵지 않고 손이 막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썼다. 글을 참 자주 썼다. 브런치는 달랐다. 참 글을 맛있게 잘 쓰는 작가들이 많아서일까.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던 걸까.


일주일 전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뭐 꼭 글을 잘 쓰라는 법 있어! 그저 성실하게 꾸준히 공을 치다 보면 언젠가 홈런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높은 완성도라는 것을 내려놓고 예전처럼 손가락이 흘러가는 대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반복과 끈기로 자꾸만 쓰다 보면 어쩌다 완성도 높은 글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매번 다짐하지만 이번에 또 다짐해본다. "브런치 구독자님들, 우리 제발 자주 만나요!"



2. 여름, 그리고 뱀 10마리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돌봄 교실 지도 교사로 4일을 나가게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만이 아닌 다른 반 아이들도 함께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영 부담스러웠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막막했다. 적어도 나와 함께 보낸 4일이 아이들에게 재밌던 기억으로 남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저런 만들기 수업을 준비해 갔다. 그러다 4일째 되던 날 대망의 움직이는 뱀 종이접기 수업을 시작했다.


놀고 싶은 사람은 놀고, 뱀 만들고 싶은 사람은 이리로 모이라고  했다. 친구를 사귀는 기술이 부족한지 툭하면 아이들과 싸우고 규칙을 흐리는 성곤(가명)이가 왠일인지 뱀 만들기 수업에 참여한다며 가운데 탁자로 왔다. 내 설명대로 아이들이 종이를 접는데 야무지게 선을 딱딱 맞게 접는 아이가 있고, 너무 삐뚤빼뚤해서 과연 작품이 제대로 나올까 싶은 아이도 있었다. 성곤이는 후자였다. 움직이는 뱀은 총 5개의 몸통이 필요한 종이접기이다. 갈길을 잃고 헤매는 성곤이의 손가락이 신경 쓰여 빠른 손놀림으로 후다닥 접어 성곤이 곁에 몸통 한 개씩을 가져다 놓았다. 왜 성곤이만 주냐고 볼맨 소리를 하는 강이에게 대답하길 잊지 않으며.


" 맘이지!"


가장 야무진 강이보다 성곤이의 뱀이 먼저 완성되었다. 입이 귀에 걸린 성곤이를 보니 뿌듯하다. 아마도 성곤이는 종이접기를 할 때마다 쉬이 포기하거나 제일 늦게 완성하지는 않았을까. 뱀을 선물하며 4일만큼의 미안함을 성곤이에게 은근히 전해본다. 성곤이와 좀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자주 싸우는 성곤이와 아이들을 중재하다보니 어쩐지 성곤이에게 쓴소리를 해준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그동안 미안했던 아이들에게 열심히 뱀을 접어주며 말 없는 사과를 전한다. 마스크 쓰고 쪼그려 앉아 뱀을 10개쯤 접었더니 현기증이 생긴다. 그래도 휘 휘 움직이는 종이 뱀을 들고 하교하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4일의 지도가 끝이 났다. 며칠 후 돌봄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그 이후로 내가 언제오냐고 매일 물어봤다고 한다. 내 안부가 궁금한 꼬마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하다.


친해지기에는 짧은 4일이었지만, 적어도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아이들에게 성실하자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아이들에게 통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 사람이 나에게 진심이냐 아니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니까. 그 진심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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