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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10. 2021

친절이라는 권위

왠지 마음이 부푸는 금요일 밤입니다. 별다른 일정이 없어도, 아니 별다른 일정이 없기에 금요일의 자유로움이  좋아요. 수업과 육아에 온힘을 다한 평일이 지나고, 왠지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해지는 .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키보드를 토독토독 두드리는  순간이 있어 평일의 어려움도  이겨내고 있어요. 평일  주말이란 리듬이 있기에 그나마 나의 삶이 견딜만하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저는 도시 근처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학교의 특성상 도시의 대규모 학급에서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이 저희 학교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저희 학교 아이들 중에는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참 많아요. 제가 도시의 대규모 학급에서 근무할 때는 반에서 신경 써야 할 아이가 2~3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지금 저희 학교는 한 학급에 1/3은 신경 써줘야 할 아이들일 정도로 비율이 무척 높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사실 저는 5년 전 저희 학교로 전근왔을 때 이 학교를 참 싫어했어요. 학부모들도 드세고, 아이들 생활지도도 만만치 않은 이곳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해 3월, 얼굴이 울그락푸르락한 얼굴로 남자 어른이 갑자기 제가 있던 3학년 학급에 들이닥쳤습니다. 산이 아버님이었습니다. 1학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은수가 산이의 얼굴을 꼬집어서 상처가 났다는 이유로 쫓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들이닥쳐서 "은수 어딨어! 나와!!!!!!!"라고 소리지르는 아버님을 끌고 복도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못 나오게 한 뒤에 대체 이게 무슨 무례한 행동인지에 대해서 아버님과 한참을 옥신각신했어요. 얼굴이 벌개진 채 마구 소리지르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 두려웠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는데, 당시 함께 근무하던 남자 선생님께서 도와주셨고, 결국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온갖 험한 말로 얻어 맞은 마음을 차마 추스리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3월 초였습니다. 저는 이제 전근을 온 상태였습니다. 저는 두 아이 사이에 그런 뿌리 깊은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고, 찬이가 저에게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하교할 때 찬이 얼굴을 찬찬히 살피지 못했네요. 여러 악재가 겹쳐서 터진 일이었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거냐는 교무부장님 말씀에 저는 학교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넘어갔습니다. 산이 부모님께 정식으로 항의를 하지도 못했어요. 그저 모든 것을 그냥 덮고 넘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줄 알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줄 알았던 그날의 기억들은 점점 깊은 상처로 제게 악몽 같이 남았습니다. 상처가 커서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깊은 우울이 되었습니다. 밤에 잘 때마다 내일 학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학교가 너무 싫어서 답답해서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점심 시간에는 무조건 밖을 걸어나갔다 오기도 했어요. 가장 화가 나는 건 그때 그 순간 내가 내 자신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었어야 했고, 산이 아버님께 제가 매우 기분이 나빴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온갖 험한 말을 묵묵히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하더라구요.


잊을 수 없던 상처도 결국 시간이 오래 지나니 다행히 색이 바랬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그 다음 해에 호두를 갖고, 휴직이라는 귀한 시간을 얻었어요. 이 학교에서 빨리 도망가고 싶었고, 그냥 교사라는 직업도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무척 사랑했고 12년이란 시간을 온몸을 바쳐 열정을 바쳤던 그 자리가 이제는 올가미 같이 느껴졌습니다.


호두만 생각하고, 호두만 사랑하며 휴직이란 시간을 평화로이 지냈어요. 사랑이란 건 얼마나 고귀한 감정인지. 우울했던 제 마음이 호두를 사랑하면서 조금씩 회복되었습니다. 내가 맡은 아이들도 이렇게 부모의 모든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이들이겠지. 그런 아이들을 나는 얼마나 허투루 대했는가.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해보는 시간이었어요.


또 3년이 지나고 저는 복직을 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는데, 전근에 실패하여 결국 원래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의 옛 과거가 있는 곳. 내가 정을 주지 않았던 장소. 이곳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고, 싫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제가 영원히 싫어할 수도 있는 이곳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복직을 했습니다.


내 아이를 키워본 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니 정말 아이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구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저의 울타리에 한 명씩 들어오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란 영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마음을 얻게 되는 그 순간은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요. 고귀한 영혼을 가진 어린이들에게는 절대 거짓이 통하지 않거든요.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몸과 마음의 불일치였어요. 버츄 프로젝트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아이들도 선생님께서 자신을 진짜 사랑해서 하는 행동인지 아닌지를 기가 막히게 안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가식적으로 하는 말이 될까봐..... 그게 가장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진실이 아닌 말은 하지 않기, 만약 정말 그 아이에게 긍정의 말을 해주고 싶다면 일단 내 마음에서 충분히 그 말을 소화한 뒤 말하기 같은 저만의 약속을 만들었어요. 여전히 진행 중에 있지만, 그래도 1학기에 뿌렸던 씨앗들을 조금씩 추수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교사의 계절은 농부와 달라 12월은 되어야 튼실한 알곡들을 거둘 수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요. 아직 사랑이란 곡식이 무럭무럭 익어가는 중이네요. 부디 12월의 제가 빈손이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저는 2학년 학급 담임이지만, 오늘 5학년 선생님의 병가로 보결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저의 작은 덩치에 비해 5학년 아이들은 저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기가 센 아이들이 많이 모여있는 학년이어서 들어가기 전부터 많이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2차시 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니 제대로 준비해서 가르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실과의 '옷 정리와 보관'이라는 차시이길래 그것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준비했어요. 잔뜩 쫄은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도 모르는 어른이니 잔뜩 쫄아있더라구요. 그중 센 척하며 아이들 사이에서 주름을 잡는 윤서도 있었어요. 수업 초반부에 아이들에게 괜히 아재 개그를 자꾸 하며 수업의 흐름을 끊는 윤서가 신경이 쓰였습니다. 이 반에서는 윤서를 잘 컨트롤하는 것이 승부수이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1학년 때 이미 학교 폭력으로 전학까지 온 윤서는 저희 학교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습니다. 자꾸만 수업 흐름을 끊는 윤서를 괜히 지적했다가 아이들 앞에서 내가 창피 당하는 것은 아닐까? 윤서의 반격이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수업을 하면서도 뒷쪽 머리에서는 계속 수업을 방해하는 윤서를 어찌할까 생각하다 제가 좋아하는 말을 떠올렸어요.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도날드 트럼프가 굉장히 저급한 방식으로 선거를 끌고 나갈 때 미쉘 오바마가 했던 말이죠. 저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저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라구요. 그들이 저급하게 나와도 우리는 품위있게 갑시다. 그래, 윤서가 유치하게 나와도 나는 품위를 지키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서가 하는 헛소리 중에 하나를 콕 집어서 윤서가 원래 말하려던 뜻을 좀 변환시켜 "윤서야, 이 문제에 대해 그렇게 창의적인 생각을 했어? 오, 좀 대단한데?"라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갑자기 윤서 표정이 좀 변했어요. 예상 궤도에서 갑자기 벗어난 제 반응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저의 계속 되는 수업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할 때마다 계속 칭찬을 해주다가 윤서가 조금이라도 참여하면 또 콕 집어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이야기해주었어요. 윤서가 조금씩 수업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저도 저희 둘 사이의 게임(?)을 좀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에 업사이클링이란 말을 우리말로 변환하는 질문을 해보았는데, 아이들이 정말 못 맞추더라구요. 맞추는 친구에게 제가 사탕을 주기로 했거든요. 마지막, 아주 쉬운 힌트까지 갔을 때 윤서의 눈빛이 번뜩였습니다. "새활용이요!!!" 그래, 때는 이때구나 싶어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사탕 하나 주어서는 윤서의 마음을 온전히얻을 수는 없겠구나 싶어서 바로 공약을 바꾸었어요. "얘들아, 오늘 윤서가 정말 잘해주었어. 윤서가 정말 잘했으니 윤서 덕분에 너희들은 모두 사탕을 먹게 되었어!" 아이들이 마구 박수 치고, 윤서의 어깨가 한참 올라갔어요. 아이들에게 모두 사탕을 나누어주고, 윤서에게는 너 오늘 정말 잘했다며 사탕 2개를 주니 5학년 윤서가 1학년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이 게임의 승기가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5학년 보결 수업은 윤서의 마음이란 귀한 선물을 주었어요. 얼마나 감사하던지.


5학년 아이들과의 수업은 그 이후로도 저에게 좋은 에너지로 남아 오후 내내 기분이 참 좋았어요. 그토록 싫어했던 이 학교인데...... 문제아들 많기로 유명한 5학년과의 수업에서 이렇게 즐거울 수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범생이 많은 학교이든, 문제아가 많은 학교이든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학교란 장소는 어리고 순수한 영혼들이 있는 곳이기에 참 가능성이 많은 곳이구나. 어리고 순수하기에 때론 실수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곧바로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의리가 그들에게는 있지 않을까. 힘으로는 누룰 수 없던 윤서는 친절이란 권위 앞에서 자발적 순종을 보여주었어요. 존중을 기반으로한 따뜻한 권위는 아이들로 하여금 내가 어른의 속깊은 보호 속에 있구나 하는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친절은 힘이 셉니다. 친절은 권위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서 권위 있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카리스마나 다른 강한 것들로 얻어지는 억지 권위가 아니라 존중과 친절을 기반으로 한 권위였으면 좋겠어요. 친절은 품위가 되기도 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 하는 아부가 아니라 한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은 나의 모든 행동을 품위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료교사, 친구에게는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윤서와의 재밌는 게임을 끝낸 저녁, 저는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좀 힘은 들었어도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참 감사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이미 시작된 2학기. 쉽지 않은 시간을 이미 보내고 있지만, 기분 좋은 12월을 위해 열심히 친절이란 씨앗을 뿌려봅니다. 코끝 시린 겨울에 오늘 같이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저의 즐거운 얼굴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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