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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18. 2021

밋밋한 일상과 불안한 밤

어제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학부모 상담기간이라 상담 중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통화한 학부모는 저희 반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모님이라 통화가 길어졌고, 끊을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례적으로 갑자기 학교 방송이 나왔습니다. 6학급 규모 학교라 방송이 거의 나오지 않는 편인데, 갑자기 나온 방송에 무슨 일인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운동장에 놀고 있는 학생들, 모두 교실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이 시간부터 아무도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 선생님과 머물러주세요.”


왠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방송이었지만, 방송과 상관 없이 전화기 저쪽 편 부모님의 목소리도 계속 되었습니다. 학부모님의 목소리에도 방송에도 집중하지 못하며 있는데, 갑자기 내선 전화가 울리는 동시에 메신저 메시지도 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긴 일어났구나 싶었지만, 교무실로 오라는 말만 반복될뿐 누구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상담을 끝내고 뒤늦게 교무실로 달려갔는데, 분위기가 심각했습니다. 학생 중 한 명이 확진되었다 합니다. 어디론가 전화하는 선생님, 운동장으로 달려나가는 선생님, 짐을 들고 도착한 코로나 검사팀.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저 외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작년에도 확진자가 나와서 한바탕 홍역을 치뤘던 저희 학교지만, 저만 올해 새로이 복직하여 아무 경험이 없었습니다.


“선생님, 저 검사 받기 싫어요.”

무엇이든 해본 사람이 더 아픈 법. 한 번 하기도 어려운 코로나 검사를 두 번이나 해야하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금방 끝날 거야, 조금만 참자.”

약해지는 마음을 단단히 잡고 신속하게 아이들을 이끌고 검사대 앞으로 갔습니다. 씩씩하게 자리에 앉았던 소현이가 면봉이 콧구멍에 들어가는 순간 악 소리 지르며 울어댑니다. 울어대는 아이와 그래도 면봉을 넣기 위해 씨름하는 간호사. 티비로 여러 번 봤던 검사이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저희 반 학생이 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라 순간 눈물이 울컥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검사이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아이들이 자그마해보였습니다. 끝까지 덤덤하게 검사를 받는 모습이 대견해보였던 아이도 교문 앞에서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와 심란한 어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코앞의 코로나 19였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떠나니 벌써 땅거미가 졌습니다. 그때에서야 왠지 모르게 찜찜했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걸리는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놀았을 때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 건 아닐까. 급식 시간에 밥 먹으며 몰래 장난쳤던 아이들도 있었는데…. 내가 통제하지 못했던 여러 순간에 코로나가 퍼졌으면 어떡하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반복되는 교사 회의에서 선생님들과 만약에 있을 여러 상황을 생각해보고, 대비책을 의논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간간히 이 분위기를 이겨보려는 유머도 있었습니다.. 칸막이 없이 입을 벌려 식사하지 않는 이상은 쉬이 감염되기 어렵다며 애써 서로를 다독였습니다. 누구도 아이들 간 감염이란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두려웠던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이 되었습니다. 새로이 들어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있는데, 교무부장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전원 음성입니다.”


머릿 속에 마구 퍼져 나갔던 두려움들이 순식간에 힘을 잃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비상 상황에 술렁였던 분위기에 편안한 고요가 퍼졌습니다. 그제서야 동료가 건네고 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한숨을 돌렸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생긴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폭풍 같이 느껴졌습니다. 6학급 규모에 100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함께 옹기종기 생활하는 곳에서 코로나 19의 위험으로부터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침착히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해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좋은 일로도 친해질 수 있지만, 힘든 일을 함께 하면 더 친해지는 느낌입니다. 공동의 경험이 주는 소중함입니다. 무거웠던 분위기를 깨보려던 유머, 서로에게 애써 건넨 위로. 별 거 아닌 것들에 기대보게 되던 위태로운 시간들.


병을 마구 흔들면 물이 희뿌얘집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차츰차츰 제 모습을 찾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희뿌연해지던 제 일상이 조금씩 제 모습을 보입니다.


어려움 뒤에 찾아오는 일상이 참 소중합니다. 다음 주에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의 아이들에게, 나의 동료들에게 이 넘치는 소중함을 부끄러워도 매일 표현하는 제가 되자 생각해봅니다.


추석의 시작이네요. 독자님의 일상도 행복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닝닝하고 밋밋한  일상이 미치도록 그립던 어제의 불안한 .  밤을 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같아요. 그리고  밤이  일상을  특별히 만들어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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