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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19. 2021

마흔의 얼굴


요즘 읽은 책이 있는데, 책을 읽다보면 저도 문장들과 함께 글로 막 서로 주고 받으며 떠들고 싶어져요. 요즘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댄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거기서 아이키가 그러더라구요. 가수들 중에서도 자신들을 춤추고 싶게 하는 '뮤즈'인 가수가 있다고. 저에게 정말 좋은 책은 저로 하여금 마구 글로 떠들어지고 싶은 책인데, 바로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이 쓴 행복에 관한 책, '아주 보통의 행복' 입니다.











그중 어제 이 문장을 읽다가 문득 거울을 보게 되었어요.







연구에 따르면 외모 자체보다는


자기 외모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이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


'사실의 힘'보다 '믿음의 힘'이 더 크다는 뜻이다


198쪽, 아주 보통의 행복







거울 속 제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어요. 이렇다 할 예쁜 얼굴도 아니고, 눈에 띄지도 않지만, 그냥 제 얼굴이 편안해보였어요. 그리고 제 속마음과도 참 잘어우러지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내년이면 마흔입니다. 40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면서 꽤 많은 시간을 제 얼굴이 아닌 얼굴로 살아야 했던 때가 있었어요. 괜히 속모습보다 더 예쁘고 인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과시했던 적도 있고, 고난 앞에서 갈바를 잃어 모든 것을 다 잃은 얼굴로 살아갈 때도 있었어요. 약해보일까봐 강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잘나보이고 싶어 오만을 담을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다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장 나다운 나로 돌아가 스스로를 내려놓고 살아가다보니 얼굴에도 편안함이 서리게 된 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아기를 낳은 뒤 제 볼은 기미와 주근깨가 내려 앉았고, 이마에는 사춘기 때도 안났던 좁쌀 여드름이 툭하면 군락지를 만들며, 눈가 주름이 차마 볼 수 없는, 어쩌면 예전보다 형편 없는 얼굴이 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지금의 제가 좋아요. 제 얼굴을 덮고 있는 평안하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좋거든요.



마흔의 얼굴을 사랑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이 들어가며 점점 더 제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도 가져봅니다. 인간의 얼굴은 참 오묘해서 그저 객관적인 이목구비만으로는 설명안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만의 아우라라고 할까요. 그 아우라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꾸미는 시간과 노력보다 더 배가 되는 시간과 노력을 속모습을 구비하는 데에 써야겠지만요. 아우라가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제가 하는 일은 치열하게 책 읽으며 나와 다른 생각과 마주하기, 치열하게 글쓰며 삶을 사유하기입니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이 문장이 제 노력을 잘 설명해줄 것만 같아요.







해석과 재해석이야 말로 인간의 마음이 보유한 최고의 무기가 아니던가.


116쪽, 아주 보통의 행복







가치중립적인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는 제 하루를 책 읽기로, 글쓰기로 재해석을 하는 작업이 제게는 꽤 중요합니다. 그 모든 것을 '성장'의 관점으로 보면 사실 그렇게 최악으로 나쁜 일은 없더라구요. 어떤 일이든 배울 점과 감사할 점은 널려있고, 그러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보면 나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잔재로 남는 제 안의 '패배의식', '자격지심'으로부터 자유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잔재들을 잘 처리하는 것이 제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일이구요. 이런 일들이 쌓이면 건강하고 근사한 아우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해서 집에 자주 틀어박혀 있는 집순이 이미지와 다르게 저는 패션에 관심이 정말 많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패션감각이 좋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타고난 패션감각이 없어서 옷 구경, 메이크업 구경을 인터넷으로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가 패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저라는 사람의 시그니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 혹은 이렇게 되길 바라는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옷과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게 패션 외길(?) 인생을 20년 정도 살아보니 이제는 나름의 철학이 생겼어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유니크한 패션에 앞서 정말 좋은 재료로 만든 옷을 입으면 사람 때깔이 달라진다.' 이런 생각이요. 그래서 요즘은 옷의 재질을 정말 신중히 고릅니다. 조금 비싼 돈을 주고 산 평범해보이는 셔츠가 하나 있는데, 워낙 고급 천이어서 그런지 정말 사람 때깔이 달라지긴 하더라구요. 요리를 하기에도 옷을 입기에도 재료는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또다른 철학이 있다면 '핏=비용'이란 생각입니다. 대부분 디자이너가 좋은 핏을 위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여 완성해낸 옷은 그만큼의 비용이 더 붙더라구요. 그래서 핏이 정말 좋다고 생각되면 돈이 좀 들더라도 과감하게 사는 편입니다.



메이크업에 대한 개똥 철학도 있어요. 제가 메이크업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저 저의 생각일뿐인데요. '립스틱 색깔이 전체 이미지를 좌우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화장품 중에서 립스틱을 꽤 신중하게 고르고, 저에게 맞는 립스틱 색깔을 찾아 삼만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사고 실패한 립스틱만 해도 꽤 되거든요.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저의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저만의 립스틱 리스트를 갖게 되었어요. 요즘 맥의 루비우라는 레드립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어요. 이렇게 립스틱 하나만으로도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 꽤 즐겁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소하게 하고 있는 의상, 메이크업 실험이 재미있어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늙고 싶어지나요? 제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개성있는 얼굴을 갖길, 그래서 함께 모였을  눈이 즐거운 우리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일단 저부터라도 저만의 개성을 평생토록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 제가 매우 관심있게 보는 밀라논나 할머니처럼요.



예쁜 얼굴보다는 내 영혼을 잘 담아내는 그릇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으로 늙어갔으면 해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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