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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24. 2021

친절은 오직 친절로만 배울 수 있는 성품이라는 걸


나의 아지트


따라서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란 장소를 불문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공간으로 가는 사람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해 달라는 부모님의 소원을 성취해드리기 위해 자기 방에 스스로 감금한 채 자괴감에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늘 같은 시간에 동네 카페나 독서실 같은 장소로 무심하게 떠나는 사람들이다.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모란 공부하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아이 옆에서 억지로 책을 읽는 존재가 아니라, 공부가 잘되는 장소로 아이를 떠미는 사람들이다.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중에서-


복직 후 생긴 습관이 있다면 중요한 업무가 생기면 육아 퇴근 무렵 훌쩍 카페로 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복직의 생활을 시작했던 3월, 학기 초 업무가 쌓이고 쌓여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날 집에서 컴퓨터를 켰는데, 아이가 엄마 없이 아빠와만 잘 수 없었던지 제 곁을 맴맴 도는 바람에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컴퓨터를 덮어버렸습니다. 업무를 못하고 다음 날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하여 하루 종일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 날 결국 컴퓨터를 싸들고 근처 카페로 갔습니다. 하하호호 떠드는 사람들 틈에서 카페가 문을 닫는 10시 안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우 전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집에 돌아가니 아이는 잠이 들었고, 저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저에게는 습관이 하나 생겼습니다. 일이 쌓일 때는 그저 떠나는 습관이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저에게는 늘 텅 빈 화면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글을 시작할 때, 시작하기도 전에 질려 버리는 거예요. 아마도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저를 압도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제가 가장 용감하게 텅 빈 화면을 향해 키보드를 사정없이 때리는 장소가 바로 카페예요. 어느 순간부터 카페에서는 글이 참 잘 써지더라고요. 내가 해야 하는 집안일이 보이지 않고,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보이지 않는 장소. 그저 화면과 나, 그리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내는 적당한 소음이 나에게 긴장을 주는 장소.



나의 공부를 위해서도 이런 장소는 중요하지만, 나의 숨 쉴 틈을 위해서도 이런 공간은 참 중요합니다. 엄마로서, 교사로서의 모든 옷을 벗고 카페에서만큼은 오로지 제 자신만 생각하며 지낼 수 있거든요.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이라도 카페에 나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모든 역할의 옷을 벗고 사는 것이 저에게는 참 중요한 루틴이 된 거 같아요.



당신의 아지트는 어디인가요? 어디든  아지트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아지트에서는 모든 옷을 벗고   가벼운 모습으로 지내실  있길요.






친절은 오직 친절로만 배울 수 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못했습니다. 최소한의 기본값만 가지고 아이들을 대했던 것만 같아요. 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후회하는 것은 기본값으로 누군가를 대하는 것인데, 오늘은 그렇게 아이들을 대했어요. 몸이 피곤했고, 오늘 같은 날은 화만 안내도 중박이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참 신기한 게 제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은 꼭 이런 날 더 저를 어렵게 만들곤 해요. 평상 시라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 소망이의 질문이 오늘따라 왜 이리 힘들게 느껴지던지.



나에게 관심받고 싶다는 것을 '필요치 않는 질문까지 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소망이. 오늘은 글똥누기를 쓰다 말고 오늘이 혹시 토요일이 아니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전에 이미 많은 질문을 했기에 저는 마지막 질문에 왜 그리 화가 나던지.... "소망아, 이제 그만하고 글똥누기 써." 단호하게 말하는 제 말투가 속상했는지 오늘 소망이의 글똥누기는 선생님 때문에 속상했다는 내용입니다. 자기는 정말 토요일인지 궁금해서 물은 건데, 선생님이 자신을 속상하게 만들었다고. 소망이는 마음이 아프니까 이해해줘야 한다는 평상시 마음은 간데없고, 저도 그 글을 보며 괜히 울컥하더군요.



그러다 퇴근하고 사진첩에서 이 글귀를 보게 됩니다.


'친절'은 친절하게 대할 때 배울 수 있는 성품입니다.

-허승환, 나승빈의 학급경영 연수 중에서


아..................... 순간 소망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망이의 가족은 소망이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저 문장대로라면 소망이는 친절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요즘은 저도 소망이에게 친절하지 못했네요. 더 나쁘게 행동하고, 더 까칠하게 말하는 소망이의 모든 말이 저의 관심을 원하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겉모습에 휘둘려 자주 저도 소망 이를 감정적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해도 친절은 오직 친절하게 대할 때 배울 수 있는 성품입니다. 아이와의 감정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제가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훨씬 어른다운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리 실천하기는 어려운지.............. 무례한 행동을 보면 벌컥 화가 납니다.


비단 소망이뿐만 아니네요. 요즘 우리 호두가 자주 하는 말이 "엄마,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입니다. 무척 근엄하게 말하는 4살 아이가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내가 그리 친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삐용삐용 경보음으로 알려주는 것만 같아 순간 조심하게도 됩니다.


오늘 저녁에 카페에서 주문을 하려는데, 앞사람의 주문이 도무지 끝나질 않는 거예요. 지루하게 기다리다가 제 차례가 되었는데 단박에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어요. 카페 종업원이 정말 친절하더군요. 카페 멤버십이 없는 제게 굳이 임시로 등록해주는 방법까지 웃으며 설명해주는 그 친절함에 반해버렸어요. 아마도 그 전 손님에게도 이런저런 것을 설명해주기에 평소보다 길어진 것이었겠죠. 프로가 되어 기본값으로 저를 대하는 종업원만 보다가 갑자기 친절한 종업원을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어요. 괜히 저도 기분 좋아서 네! 네! 하고 씩씩하게 미소로 대답하게 되었답니다.


집과 학교에 있는 나의 아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친절한 사람인지. 모든 것이 익숙해지더라도 친절한 사람은 진짜 훌륭한 사람이란 생각을 합니다. 그런 사람을 꿈꾸면서도 자주 컨디션에 따라 흔들리네요. 아직 아마추어여서이겠죠. 그래도 꿈은 꿔보고 싶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정말 친절한 사람이 되자고요. 나이가 들수록 친절한 사람이라면 더 멋지지 않을까 생각도 하면서요. 보통 나이가 들면서 더 불친절해지기 쉬우니까요.


내일은 "엄마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라며 찌릿 저를 쳐다보는 저희 딸의 모습을 보지 않길. 월요일에는 소망이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려 노력해보는 선생님이 되길. 헛헛해진 마음을 새로운 다짐으로 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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