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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Nov 18. 2021

단단한 선함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사는 삶


교사에게 공개수업이란 세월이 가도 언제나 떨리는 것이다. 올해는 내가 첫 통합 학급을 맡았는데, 시훈이 어머님께서 통합 수업을 신청하셨기에 더 떨렸다.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보이는 시훈이는 학기초 착석이 안되고 툭하면 교실을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반향어를 말하는 일이 잦아서 어머님께서 다른 어머님들과 함께 수업 공개를 보실 때 혹시 불편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인품이 좋으신 분이라 괜히 미안해하실까 봐였다.


시훈이가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준비하고, 함께 짝 활동을 도와줄 마음씨 좋은 짝도 생각해놓았다. 머릿속으로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시훈이, 시훈이 어머니가 공개 수업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해봤다. 여전히 걱정되었지만 하루 전날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진심'이고, 나는 그동안 '진심'을 다해왔으니까 이제 됐다고.


수업 당일이 되었는데, 특수 선생님이신 소현 선생님께서 올라오셨다. 시훈이가 늦잠을 자서 공개 수업 시간에 오지 못할 것 같단 소식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훈이 어머니께서 좀 더 편안하게 통합학급의 수업을 보시려면 다른 어머님들이 없을 때 보시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특별히 시훈이 어머님을 위해 한 차시 더 공개하기로 하고, 3차시에 와주십사 부탁드렸다.


시훈이가 이제는 착석을 잘하고 수업 시간에 조용히 있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공개 수업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요즘따라 시훈이는 하기 싫은 활동이 나오면 보조 선생님이신 정인 선생님을 가끔 때렸다. 그 부분 때문에 요새 계속 정인 선생님, 소현 선생님께서 계속 지도중이었는데, 하필 수업 시간에 정인 선생님을 또 때린 것이다. 말리는 나에게까지 폭력을 쓰는 시훈이를 보며 나도 깜짝 놀랐다. 뒤에 계신 어머님은 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고 충격받은 얼굴로 서계시는 어머님께 "어머님, 그래도 시훈이가 정말 많이 좋아진 거예요. 예전에는 착석도 안되었거든요."라고 애써 위로해드렸지만, 어머님께 내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간 어머님께 문자가 왔다. 너무 죄송하다고. 선생님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날 뻔했다며 시훈이가 그럴 때마다 회초리를 드셔도 되니 엄하게 혼내달라 부탁하셨다. 설사 그런 상황을 보더라도 이기적으로 구는 학부모님들도 있을 텐데, 엄하게 혼내달라 부탁하시는 시훈이 어머님이 고마웠다.


결과가 참담했기에 속상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해석이 더 중요한 법이다. 시훈이의 고쳐할 점을 어머님과 이제는 분명히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어머님께 특수 교육 전공자인 소현 선생님께 자세히 여쭤보시고, 집에서 노력하실 수 있는 것은 실천하고 노력해달라 부탁드렸다. 교감선생님, 소현 선생님, 정인 선생님과도 틈이 날 때마다 계속 협의하며 어떻게 하면 시훈이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대었다.


내가 그동안 시훈이에게 너무 물렁했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지 않나 싶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대하는데, 시훈이에게는 따뜻하기만 했던 것 같다. 시훈이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했으면 지금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줬을 텐데..... 괜히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있어서 늘 진심인 소현 선생님, 시훈이에게 따뜻한 엄마 같은 정인 선생님, 좋은 인품을 가진 시훈이 어머님 이렇게 시훈이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어른들이 곁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협의하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나의 교육적 열정을 고맙게 생각해주는 학부모님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시훈이가 나와 남은 2개월 동안 어떤 성장을 보일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내가 이 학교에 있는 것은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돕기 위함'이니까. 설사 그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단단한 선함


오후에 혜준이를 훈육해야 할 일이 있었다. 혜준이의 고운 성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나는 이럴 때마다 매우 슬퍼진다. 친구 따라 강남 잘 가는 혜준이는 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친구를 놀리지 말아야 하는데, 다른 친구들에 휩쓸려 같이 몇 마디 보탠다거나 하는 일이다. 주동자는 언제나 다른 아이이나 혜준이가 가끔씩 포함될 때가 있다. 평소 혜준이가 보여주는 성품이 기특하기에 나의 실망감은 더 크다.


아직 9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무리 성품이 좋아도 재밌어 보이면 어디든 따라갈 수 있는 나이이다. 이해는 가지만, 나는 혜준이에게 올바른 방향을 자꾸만 제시해주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혜준아, 선생님은 너를 정말 존경해. 너는 멋진 성격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선생님은 이럴 때마다 슬퍼져. 너는 참 착하지. 그렇지만 흔들거릴 때마다 흔들려버리는 착함은 힘이 없는 거야. 혜준아, 흔들릴 때 무엇이 옳은 것인가 잘 생각해봐. 단단하게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혜준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혜준이는 과연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9살 아이를 앞에 두고 하기에는 너무 심오한 말인 것 같았지만, 나는 혜준이에게 말이 주는 분위기와 힘을 그저 전해주고 싶었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내가 흔들릴 때 옳은 게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만은 기억해주면 좋겠다.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삶은 고단하다. 고단한 삶은 사람을 세 부류로 만드는 것 같다. 고난에 의해 피폐해져서 악만 받친 사람, 하루하루의 고난을 회피해가며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 고난을 재해석하여 좀 더 단단한 선함을 만들어 가는 사람. 한없이 착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면 괜히 떨리는 마음이 든다. 흉포한 고난이 와서 저 착함을 저 사람에게서 뺏어가 버릴까 봐. 그래서 언젠가 그 사람이 온기 없이 사는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단단한 선함을 가진 사람은 귀하다. 어떤 고난이 와도 왠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안정감을 준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혜준이는 어떤 어른으로 클까? 9살의 시간 동안 내가 끊임없이 해주었던 '단단한 선함'에 대한 이야기가 혜준이의 마음속에 뿌리내리길 바란다. '단단함'이 있다면 혜준이는 정말 많은 사람을 품는 큰 나무 그늘이 될 사람이니까.



지금 좀 불쾌하네요


엄마는 항상 나를 걱정했다. 마음이 여린 내가 사회생활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나 또한 나를 늘 걱정했다. 집에 틀어박혀 글 쓰는 직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내가 학교에 나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상호작용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내가 그런 많은 자극을 견뎌낼 수 있을지..... 스스로를 늘 걱정하며 살았다.


나는 내 삶을 엄마가 되기 전과 후로 나눈다. 엄마가 된 이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여린 마음으로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버리던 나. 누군가로 인해 속상했던 날, 그때 당시 아기였던 내 딸에게 작은 일로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 나의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내 딸에게까지 내 감정이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그날 밤은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다짐했다. 할 말은 하고 살기로. 집에 가서 이불 걷어찰 일 따위는 만들지 말자고.


얼마 전 학교 행사로 떡을 주문해야 했는데, 우리 동네 맛집으로 유명한 떡집에 전화를 했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내가 질문을 했다. "사장님, 그럼 그 세트라는 것은 4종류의 떡이 나온다는 건가요?" 횡설수설하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내내 잘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했는지 사장님이 벌컥 화를 내셨다. "아니, 4가지라면 4종류이지 그럼 4개겠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사장님을 보며 화가 났다. 그래도 같이 화낼 수는 없어서 차분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사장님, 저 지금 좀 불쾌하네요. 일단 주문은 안 할래요. 전화 끊을게요." 심장이 쿵쾅쿵쾅거렸고 분노가 쉬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적어도 똑같이 화내지 않으면서도 내 할 말은 했다는 생각에 자신을 다독거렸다. 한 시간 뒤 사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밤샘 작업을 해서 제가 많이 힘든 상태였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살면서 무례한 사람을 만나는 건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일 외에도 업무상 외부 사람과 전화를 해야 할 때 종종 무례한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분노를 피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야 하는 노하우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는 것에 안도를 한다.


나는 내 딸을 위해 마음을 잘 지켜낼 것이다. 사랑은 참 놀라운 것이다. 혼자서는 죽어도 고쳐지지 않던 것이 딸아이 하나로 인해 확 바뀌니 말이다. 너저분한 일들은 집 밖에서 모두 끝내고, 집에서는 경쾌한 마음으로 아이와 놀고 싶다. 언제나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내 딸에게 너무 고맙다. 아이를 낳은 일은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아빠 때문에 로또가 안 되는 거예요


우연히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란 프로그램을 봤는데,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가 나왔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자기 집이 너무 가난했는데, 부모님은 정말 멋쟁이에 남다른 분들이었다 한다. 부모님은 돈이 생기면 쌀을 사 와야 하는데, 쌀 대신 꽃병을 사 오곤 했다고 한다. 삶의 낭만을 결코 잃지 않으셨던 분들이기에 늘 시각적 트레이닝을 충만히 받아왔다고 한다. 그랬기에 어쩌면 일찍부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아빠가 생각이 났다. 삶의 낭만을 잊지 않으셨던 아빠는 돈이 생기면 LP를 샀다. 우리 집 전축에는 늘 올드 팝송이 흘러나왔다. 내 삶은 음악으로 가득 차있었다. 아빠께서 늘 청각적 트레이닝을 충만히 시켜주신 것이다.


얼마 전에도 소현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LP 모으기가 취미라는 소현 선생님의 말에 자연스레 아빠를 떠올렸다. 나를 키웠던 우리 집의 그 무수했던 LP들. 음악은 여전히 내 글의 원천이고, 내 삶의 일부이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면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들뜬 기분으로 보내기도 한다.


45살에 돌아가신 우리 아빠. 나는 아빠와 고작 19년의 삶밖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음악과 책이라는 아빠의 씨앗은 그 이후의 내 삶을 오래도록 지켜주었다. 나는 호두에게 어떤 엄마로 살아가야 할까 고민할 때면 아빠를 생각한다. 내가 떠난 그 자리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호두 마음에 귀한 씨앗을 뿌리는 엄마로 살아가자며 다짐하곤 한다. 음악이 흐르고 책장을 넘기는 삶. 어떤 풍파가 와도 그런 삶은 호두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도와줄 것이고, 그 세계가 있기에 호두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만큼이나 즐겁게 사는 나를 보면 그렇다.


나도 여린 사람이나 감동적인 것만 보면 늘 눈시울이 불거지던 아빠보다는 강인한 사람 같다. 불거진 눈시울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던 나의 아빠를 생각하는 밤. 정세랑 작가는 자기 부모를 향해 이런 표현을 썼다. "아무리 해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이미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나도 로또가 되지 않는 건 왠지 다 아빠 때문인 것만 같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들을 딸의 삶에 보석같이 수놓은 아빠. 이미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슬프지 않았는데, 오늘 밤은 좀 슬프다.


"아빠, 감사해요. 아빠 딸이라서 저는 지금도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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