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Dec 02. 2021

맑고도 아릿한 새벽

갑자기 눈이 떠졌다. 어둠 속에서 새벽빛의 조도만으로 시간을 가늠해보고 휴대전화를 본다.  새벽 4시.


보고서는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지만,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지냈던 그 한 달이 내게 준 선물은 새벽에 저절로 떠지는 눈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나의 말에 이른 새벽 시간을 분명 사랑하게 될 거라 친구가 확언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고 있다. 고요함과 또렷함, 조용하며 바쁜 하늘의 복잡 미묘한 모습. 이른 새벽만이 가진 모습이 좋다.


지난 밤 나에게 도착한 친구들의 일기를 조용히 읽으며 나 또한 어제 내 하루를 찬찬히 돌아본다. 밤에 한 없이 감정적으로 쓰여지던 일기가 새벽의 또렷함을 만나 조금은 이성적이게 된다. 바삐 사느라 돌보지 못했던 이런 저런 감정들이 빼꼼 고개를 든다. 섬세하게 스스로를 돌보는 작업을 매일 할 수 있어 새삼 감사하다. 내 마음은 고운 털을 가지고 있어 정성껏 매일의 빗질을 하여야 고유의 결을 잃지 않는다.


새벽마다 읽는 유지혜 작가의 ‘쉬운 천국’을 꺼내 든다. 20대인 작가가 바라본 여행의 단상이다. 나와 정말 비슷한 영혼을 가진 작가의 생각을 보노라면 참 신기하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어쩜 그런 문장을 쓰는지 질투마저 느껴진다.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와 마음에 드는 주제로 신나게 한바탕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종이책을 주문해서 밑줄을 그으며 조금씩 음미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보물이 하나 더 늘어났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하길, 피할 수 없다면 능히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시길. 성경을 읽다보면 어느새 겨울 해가 떠올라 분홍빛으로 구름을 물들이고 있다.


이른 새벽의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아마도 하루의 시간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 혼자 고요히, 나를, 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 맑고도 아릿한 시간.


세탁기와 청소기 소리로 분주한 저녁, 다시금 나는 새벽의 시간을 기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예쁜 눈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