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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04. 2021

Beloved

#Beloved


신규 때의 일이다.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교 생활을 할 때 가장 소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해.”


그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고, 여전히 생생하다. 학교를 옮기면 그 학교에서 내가 가장 소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생각해본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는 배움터 지킴이 할아버지와 청소해주시는 여사님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시는 그분들은 내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관심을 놓치기 일쑤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인사라 생각했다. 그분들을 만날 때마다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남들에게 별일 아닐지 몰라도 내성적인 면이 많고 나의 목소리를 내뱉는 것조차 쑥스러움이 많은 나에게는 사실 용기가 많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어쩜 그렇게 매일 새롭게 쑥스러울까? 그래도 쑥스러운 스스로의 모습을 털고 다시금 목소리를 크게 내며 여사님께 인사해보곤 한다.


“안녕하세요!”


소소한 선물로 마음을 전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더운 여름에 배움터 지킴이 할아버지께 시원한 음료수를 몇 번 사다 드렸는데, 뭘 이런 걸 사오냐고 매번 그러셨다. 어느 날, 내가 퇴근을 하며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다가오셔서 “잠깐 기다려봐유!”라고 황급히 말씀하셨다. 왜그러실까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큰 검은 봉지를 건네 주신다. “텃밭에서 따왔슈. 갖다 드슈. 별로면 버려도 되유.” 봉지 안에는 상추가 한아름 들어 있었다. 이 많은 걸 따오시느라 얼마나 어려우셨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졌다. 검은 봉다리 가득 채워진 할아버지의 마음을 받은 것 같아 퇴근길이 참 먹먹했다.


청소하시는 여사님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추운 날 고생하시는게 마음에 걸려 핫팩 세트를 사다 드렸는데, 여사님께서 어느 날 신문지 뭉치를 건네셨다. 얼른 받으라고 하시며 쑥스러운듯 다른 곳으로 가시는 여사님을 뒤로 하고 신문지를 열었다. 딸기잼이 들어 있었다. 집에 와서 맛을 보니 오랫동안 끓인 딸기잼의 맛이 참 진했다.


어른들의 선물은 특별하다. 검은 봉지에, 신문지 뭉치에 투박하게 담긴 선물이 왜 예쁘게 포장된 선물보다 찡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상추를 뜯느라 빨개지는 손, 딸기잼을 젓느라 아픈 팔을 생각해서일까? 돈을 주고 쉬이 살 수도 없고, 쉽게 만들 수도 없는 선물들. 나는 기껏 클릭 한 번으로 사는 물건을 선물했을 뿐인데 귀한 선물로 되돌려주는 그분들의 마음에 겸허해진다.


그분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오히려 내가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학교 업무 때문에 서명을 받으러 갈 때 100장이라도 해주겠다는 배움터 지킴이 할아버지와 나를 보면 늘 싱긋 웃어 주시는 청소 여사님이 계셔서 학교는 예전보다 따뜻한 장소로 느껴진다.


냉장고 속 고이 모셔둔 여사님의 딸기잼을 바라보며 문득 사랑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살 수 있어 참 감사하다.




# 귀하디 귀한 딸


‘사랑’하면 빠질 수 없는 나의 부모님들. 내 이름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이번에 엄마와 멀리 어딘가를 가기로 했는데, 장거리 운전을 잘하는 나를 두고 굳이 본인이 운전하겠다고 우기시는 엄마와 한참을 실랑이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늘 그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딸을 귀하게 생각하는 엄마 덕분에 모든 집안일에서 열외가 되곤 했다. 어른이 되어 첫 자취를 할 때 할줄 아는게 아무 것도 없는 스스로에 놀라면서도 엄마가 그동안 나를 위해 참 애쓰셨구나 하는 생각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항상 편지를 쓰셨다. 나 또한 아빠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의 회사 서랍 한 칸에 가득 채워진 내 편지들을 보며 사람들이 놀랐다고 한다. 그 많은 편지를 회사에서 여러 번 읽고 읽었을 아빠를 가끔 떠올린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빠의 가슴 속에 나란 존재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생각으로 힘이 들어 아빠의 편지를 모두 정리했지만, 시험공부 하느라 지친 나에게 시집과 함께 주셨던 편지는 아직 간직하고 있다.


나의 부모님에게는 내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자주 생각한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내가 귀하디 귀한 존재라는 건 단단한 뿌리를 갖게 한다. 그 사랑 위에 나는 세상을 살아갈 뿌리를 내렸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해도 그 사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여전히 사랑 받은 기억은 나를 든든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엄마이지만, 내 딸 호두에게 사랑을 풍부히 주는 것이 육아에서 가장 중요하다 생각을 한다. 호두에게 매일 말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우리 딸 엄마가 정말 사랑해.”

“너는 공주님보다 더 예뻐.”


너무 많이 들은 말이어서인지 이제 내가 “고마워.”라고 말하면 호두는 이렇게 되묻는다. “내가 태어나줘서?”


언젠가 호두가 크면 지금의 나처럼 자신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아온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길 소망한다. 김소영 작가의 말처럼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해서 사랑받지 못하고 무례한 순간을 한 없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귀하디 귀한 딸이 어느 새 엄마가 되어 또 다른 귀하디 귀한 딸에게 받은 사랑을 전하고 있다. 딸을 보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들이 참 좋다.



# 영채의 용기


우리반 지호가 3학년 영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통학 버스 안에서 영채가 1학년 아이를 시켜 지호에게 막 건방지게 굴라고 했단다. 1학년 민찬이는 또 하라는대로 야야거리며 형인 지호에게 선을 넘었다.


지호의 이야기를 듣고 민찬이와 영채를 불렀다. 민찬이를 훈육하여 보내고, 영채와 1:1의 시간을 가졌다. 영채가 한 행동이 얼마나 치사하고 잘못된 행동인지를 차분히 이야기해주었다. 너는 네가 강하고 멋지다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너의 행동이 하나도 안 멋지고 초라하다고. 영채의 눈빛이 흔들렸다. 계속 안 멋지게 행동할 경우에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제재에 대해 설명해주고 아이를 보냈다.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녀석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영채가 복도를 지나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눈을 피하거나 작은 목소리로 인사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영채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선생님!”하며 인사했다. , 영채가  달리 보였다. 나도 한껏 다정함을 담아 “영채야, 안녕!”하며 인사했다.


또 다음 날은 금요일이었다. 복도에서 또 마주친 나에게 “선생님, 주말 잘 보내세요!”라고 인사하는 영채를 보며 깜짝 놀랐다. 이틀 전에 나에게 호되게 혼난 녀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일 없었던 듯 인사하는 영채가 진짜 멋지게 보였다. 우리반 남자 아이들이 요새 ‘사나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영채가 진짜 ‘사나이’같이 느껴졌다. “영채야, 고마워. 너도 주말 잘 보내!” 그에 질세라 다정함을 두 스푼 섞어 영채에게 주말 인사를 보냈다. 영채가 기분이 좋아졌는지 씩 웃었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한 채 현재의 행동만 보고 판단하는 스스로가 가끔 한심하다. 영채의 행동이 비열하게 느껴져서 화가 잔뜩 났었는데, 커가는 아이가 가끔 그런 치기 어린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괜히 호되게 혼낸게 미안해진다. 나 또한 십대에 얼마나 치기 어린 행동을 많이 했었나. 나 자신 조차 그렇게 컸으면서도 아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이 된다.


교사에게 좋은 뜻으로 한 방을 제대로 먹여준 영채가 멋지고 고맙다. 나에게 인사해준 영채의 용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들의 한 순간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고 다시금 다짐하는 순간이다.




# 하기 싫을 때는 더 열심히


요즘 수업하기도 업무하기도 도무지 의욕이 나지 않는다. 12월은 12월인가보다. 아무래도 한 해의 기력을 모두 써버린 것 같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방학까지는 한 달이 남아있다.


일하기 싫을 때는 2배로 열심히 하자 생각한다. 수업 준비를 평소보다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수업할 때도 평상시보다 좀 더 높고 힘을 주어 목소리를 내며 수업하려 했다.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한 수업은 아이들의 생기로 가득 찬다. 나의 준비보다 몇 배로 되돌려 주는 아이들의 열정을 바라보며 수업하기 싫은 마음은 도망가고 뿌듯함이 차오른다. 덕분에 12월 수업이 그 어느 달보다 제일 파이팅 넘치고 있다.


교사로서의 열정을 완전히 불태우고 방학 때 당당하게 늦잠을 즐기고 싶다.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2학기를 끝내며 느껴보고 싶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 설명할 순 없지만, 정확히 알고는 있다. 그 느낌이 다음 해를 성실하게 살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도.


하루의 시간이 참 소중하다. 내게 주어진 일분 일초의 시간들에 하나씩 의미를 새겨본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실패하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매일 새로운 다짐으로 부딪혀 보는 성실함을 사랑한다. 2021년의 마지막 한 달, 성실하게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성공보다 성실한 실패가 더 멋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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