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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04. 2021

엄마와의 겨울 산행

나는 지리산을 좋아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내가 읽는 책 이곳 저곳에 등장하던 지리산은 그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산이었다. 한마디로 지리산을 책으로 먼저 등반한 느낌이라고 할까.


얼마 전 소연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평소 등산을 좋아하는 소연 선생님의 버킷리스트가 에베레스트를 가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걸 모두 해볼 용기를 가진 소연 선생님이 부러우면서도 가까운 지리산 조차 갈 용기를 못 내는 내 모습이 아쉬웠다. 엄마에게 지리산에 언젠가 가보고 싶다 이야기했더니 “가면 되지. 같이 가줄게.” 라고 쉽게 대답하셨다. 마치 집앞 편의점을 가자는 것처럼.


내가 꽤 즉흥적인 사람인데, 그런 나의 피가 어디서 왔겠는가. 즉흥적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우리 엄마, 아빠의 딸인 나는 호두와 시소를 타다 말고 그 자리에서 지리산 노고단 등반을 예약했다. (요즘 지리산 노고단은 코로나 19로 인해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음) 일주일 뒤면 새벽부터 떠날 엄마를 앞에 두고 해맑게 웃으며 시소를 타는 호두에게 좀 미안했지만, 나는 호두보다 내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자아가 강한 엄마이니 어쩔 수 없다.


엄마는 설레이신지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서 되물으셨다. “너 진짜 가는 거지, 너 이러다 취소하면 가만 안둔다.” 며칠 전 엄마가 어항 청소를 하다 유리가 깨져서 손목에 박혀 피가 많이 나는 사고가 있었다.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지리산부터 취소하는 내게 엄마가 대답하셨다. “무슨 소리야, 발도 아니고 손목을 다쳤는데 왜 안가.” 어떻게든 가고 말겠다는 엄마의 의지가 느껴져서 말을 더 못 이었다.


엄마는 나와의 여행을 좋아한다. 사실 당연한 거다.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고, 엄마의 남편, 엄마의 장남 같은 존재가 나인데, 엄마는 얼마나 나와 여행하고 싶을까. 남동생이 있긴 하지만, 효도는 모두 누나 몫으로 양보(?)하고 있는 탓에 엄마는 나와의 여행을 언제나 기다린다. 코로나 19 상황 이전에는 엄마를 모시고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꼭 둘이서 여행을 다녔는데……. 엄마가 정말 기다리실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짐을 꾸려 집을 나섰다. 엄마도 벌써 일어나서 준비중이셨다.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며 지리산에 도착했다. 가는 길 내내 창가 자리에 서로 앉으라고 실랑이를 하고, 서로 더 무거운 가방을 들겠다며 옥신각신했다. 모녀들은 다 이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애니어그램 2번 조력자 유형이라(다른 사람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인 유형) 그런 걸까. 나는 검사를 했지만, 엄마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봐도 엄마는 2번이다. 딱 봐도 안다. 그리고 내가 그냥 커피라면 엄마는 TOP수준이다. 2번도 보통 진한 2번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싸우는 주제는 늘 ‘서로 더 나쁜 위치를 감당하겠다’이다. 참 희안한 모녀이다. 싸움 끝에 늘 두손 두발 다 들며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진짜 너무 사랑해.’ 우리 집에는 대왕 2번이 있다. 우리 외할머니이다. 80대인 우리 할머니는 엄마에게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전화를 하신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된 딸이 너무 걱정되고 안쓰러워 거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신다. 귀찮아하면서도 미소를 띠고 있는 엄마의 얼굴에 사랑 받는 사람만이 가지는 빛이 난다. 우리집은 애니어그램 2번으로 가득찬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어찌되었거나 2번 모녀는 그렇게 투닥투닥 거리며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지쳐 하는 내게 엄마는 너와 등산 못해먹겠다고 저 멀리 가버리셨다. 나는 치사함에 이를 갈며 무거운 다리를 끌고 열심히 따라갔다. 체력은 없으나 근성은 있으니 내가 노고단에 도착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엄마와 눈꽃을 바라보며 5분마다 감탄을 주고 받았다. 아름다운 걸 보면 어쩔줄 모르는 모습까지 똑같은 우리는 계속 같은 풍경을 보며 놀라워했다. 등산 친구가 엄마라 다행이다. 매번 놀라워해도 엄마도 정말 그렇다며 공감해주니 말이다.


노고단쯤 도착하니 나를 가리워주던 나무도 없어지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 정말 몸이 옆으로 밀릴 정도였다.  상황에서도 ‘설경이 너무 예쁘다!’, ‘오기 정말 잘했다.’ 긍정왕 엄마 덕에 끝까지 올라갔다. 노고단에 도착해서는 서있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불고 눈이 왔지만, 겨울산만이 내어 주는 예쁜 설경에 마음이 하얗게 차올랐다. “엄마,  진짜 오기 잘한  같아.” 우리는 세찬 바람을 맞으며 노고단 앞에서 겨우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에 엄마가 내 바지 길이를 보고 놀렸다. 바지 길이가 좀 애매해서 잘 안 입는 바지인데 입었더니 그 틈새를 놓치지 않는다.


“너 꼭 찐따 같아.”

“엄마 어떻게 딸한테 찐따라고 할 수 있어!!!!!!”


내려오는 길에 엄마랑 2차전을 하며 내려왔다. 찐따라고 부르며 깔깔 거리는 엄마 뒤에 온통 새하얀 등산길이 펼쳐져 있었다. 분하지만 엄마와 등산길이 너무 잘 어울려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장면 같다. 어린 아이처럼 웃는 엄마와 한 없이 하얗고 예쁘던 길. 아마 사진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색감, 더 다정한 소리로 내 마음에 박혔겠지.


등산으로 지친 엄마는 따뜻한 기차 안에서 잠이 드셨다. 난 오늘의 모든 순간과 말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싶어 한 글자씩 남기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지리산이란 상상의 세계에 다녀온 것처럼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던 순간과 나에게 과분한 사랑과 치사한 놀림을 동시에 주는 사랑스런 엄마를 어떻게든 글에 담고 싶었다.


“엄마, 나 이렇게 즉흥적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야, 밋밋한 것보다 낫지. 이도 저도 아닌 거 보다 나아. 늙어보니 별거 없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딸의 즉흥성을 마구 응원해주는 엄마가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 그래서 그냥 앞으로 더 즉흥적이게 살아보려 한다.


귀에 조용히 존 메이어의 ‘gravity’가 울리고, 노곤노곤 잠든 엄마가 곁에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쓰며 이 순간을 즐겨본다. 사랑하는 노래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할 수 밖에 없던 겨울의 지리산.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분홍빛 하늘이 또 펼쳐져 있다. 붙잡을 수 없는 행복이 앞에 있다. 붙잡을 수 없지만 행복의 모습을 똑바로 눈에 담아본다. 그렇게 또 하나의 행복의 원형이 마음에 담긴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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