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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18. 2021

그가 책과 원수 진 사연

#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변     


오랜만에 연정 언니랑 통화를 했다. 이것저것 상의할 게 있어서 전화한 건데 언니가 통화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요새 왜 글 안 써?”     


깜짝 놀랐다. 내 글에 늘 ‘좋아요’를 눌러 주던 언니가 어느 순간부터 누르지 않기에 읽지 않는다 생각했다. 언니는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잘 누르지 않게 되었다며 너의 글을 읽는 게 무척 재밌다 덧붙였다. 가슴이 찡했다. 항상 조용히 관심을 가져주고 있었다는 것, 좋아요 하나에 내가 가질 부담의 무게까지 생각해주는 것. 나는 이렇게 나도 모르게 배려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진한 행복감이 몰려오곤 한다.     

 

마지막 글을  날짜를 보니 정말 글을    13일이나 흘렀다. 사실 그동안 글을    아니다. 나는 매일 글을 쓰려 시도했다. 그러나 썼다 지웠다 하며 차마 올리지 못할 글들을 노트북에, 아이폰 메모장에 계속 쌓아둘 뿐이었다. 이렇게 지독히도 글이 엉킨 실타래가 되어버리는 시간들은 무척 당혹스럽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서 밀물과 썰물처럼 당연하게 다가오는  시간들이제는 조금씩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썰물이 지나가면  밀물의 시간이 오는 것을 알기에.     


연정 언니의 마음은 내 밀물의 시간을 좀 더 당기고 있었다. 갚을 수 없는 마음들 속에서 내 마음도, 나의 글쓰기도 커가고 있다.           



# 고민의 종지부     


사실 정말 글을  쓰지 못한 가장  이유는   동안 했던 마음고생 때문인  같다. 12월부터 시작되는 인사철의 번뇌는 나에게도 찾아왔다. 당연히  학교에서 계속 일할 거라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12월이 되며 미루어 오던 고민이 고개를 들었다.


“둘째는 어떻게 할 건데!”     


사실 그동안의 나는 커리어보다 둘째 임신이 훨씬  간절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을 ‘호두를 낳은 이라 생각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산과 동시에 복직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흘러 흘러  의지와 다르게 여러 커리어를 쌓게   년이었다. 이런  바란  아닌데.....  나이 들기 전에 내년에는 시험관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 가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험관 병원 다니는 것에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교감선생님께 발령을 미리 말씀드리려 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무척 많았겠지만,  의지가 워낙 확고하니  말을 아꼈다.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들의 조용한 지지 아래 나는  하고 싶은  다하고 사니 말이다.     


이제 발령에 대해 말씀드려야지 마음 먹었던 어느 주말, 육아에 지쳐 오후에 커피를   하러 혼자  카페에서 우연히 존경하는 선배님을 만났다.  이리 피곤해 보이냐며 인사를 건네셨었는데, 이틀  전화가 왔다.    

  

 그날  보고 너무 마음 아팠어. 내가  처음 만나던 10 전에 정말 생기 발랄하고 반짝반짝했는데.... 육아도 좋지만, 나는 네가 좋아하는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     


선배가 봤던 그 시절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반짝반짝하던 내 모습이 선배의 마음에 담겨 있단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며칠 뒤 친구와 숲이 보이는 카페에 가 함께 노을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는데, 나의 고민을 듣더니 친구가 말했다.


“둘째가 있다고 해서 막 소름 끼치게 행복해지는 건 아니야.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건 또 그만큼의 책임감과 무게감도 더 드는 일이거든. 나는 네가 둘째를 가지려는 것이 정말 네가 좋아서인지, 미련인지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갑자기 눈물 흘리는 친구를 보며 내가 더 당황했는데, 친구의 마지막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이건 차가운 조언이야.”     


얼마 전 읽은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안온한 말들 속에서 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하는 차가운 조언을 듣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나와의 관계를 걱정하면서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날 보인 친구의 눈물과 내가 불편해할까 걱정하면서도 진심으로 남긴 차가운 조언이 내게 참 진한 인상을 남겼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는 정말 좋아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걸까. 미련일까. 하루 종일 생각해본 결과 미련이란 결론을 내렸다.  젊음과 에너지를 이제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엄마가 되기를 포기했지만, 좋은 리더가 되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엄마 같은 존재가 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식도 소중하지만 남의 자식도 소중한 것이니까. 나는 일을 기깔나게 잘하는 리더는 되지 못하겠지만(그리고 되고 싶지도 않지만), 일을 구멍 안날 정도로 적당히 하면서도 누군가의 어려움을 넉넉히 품어주는 리더가 되고 싶다. 그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학년 부장을   나는 적어도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은 학년 선생님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야겠다 다짐했었다.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와 함께 업무를 공유하며 나아가야 하는 동료들이 나로 인하여 조금은  편안하고 즐거울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어쩌면 업무보다 이 부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둘째와 시험관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나니 비로소 나 자신이 보였다. 한 아이의 엄마이지만, 리더로서도 더욱 성장해야 할 스스로가 보였다. 나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서 하실 많은 일들을 기대한다.


오랜 고민의 종지부를 찍으며 발령 고민까지 해결한 지금은 차라리 홀가분하다. 이제야 글을 좀 쓸 수 있게 된 것 같다.       



# 나에게 사랑은     


내게 있어 사랑은 상대방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진짜 시작되는 감정이라 생각된다. 가장 부족하고 누추한 면을 넉넉히 덮어주었을 . 바로  지점에서 새로운 차원의 사랑이 시작된다.           



# 최대의 노후 준비     


4 아이를 키우는 복직한 엄마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아이의 등원 준비를 동시에 정신없이 하고, 직장에 나가  일에 몰두하며, 퇴근과 동시에 육아와 집안일 출근을 하여 10 전까지 내게 주어진 모든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 3월부터 내가 살아온 삶이다.      


솔직히 아이가 없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밋밋한 일상이다. 나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일을 전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씩 일탈은 있으나  허기가 진다. 그러나 밋밋한 일상이 아이에게 주는 평안함과 리듬감은  중요하다. 밋밋해질수록 아주 섬세하고 작은 행복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다. 마치 아주 조용해진 순간에만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처럼.      


인생의 큰 고비가 오고 나서야 밋밋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밋밋한 일상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담뿍 느끼며, ‘아 행복해!’라고 매일 밤 침대에서 조용히 외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행복들을 잘 발견하는 섬세한 눈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 섬세한 행복의 감각을 일깨우려 노력 중이다.      


종달새같이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우연히 놀이터 벤치에서 발견한 눈사람 사형제의 앙증맞음 속에서,  가다 마주꽃집  포인세티아의 빨간  속에서. 작은 것들에 크게 기뻐하며 그렇게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밋밋한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이가  것이고, 나이  으로  때에는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 일상에 찾아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작은 행복에  뜨기  인생 최대의 노후 준비라 생각하고 있다. 적금보다 든든한. 내일 행복해지기 위해 바로 지금 행복해지는 . 나는 그렇게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 그가 책과 원수진 사연     


남편은 책과 원수를 졌다. 원래도 독서를 싫어하는데, 나 때문에 더 싫어한다. 사건의 일말은 이렇다.   

   

26살 한참 철없을 때 나는 엄청 재밌는 소설을 발견했다. 그때는 마침 방학이었고, 긴 장편 소설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 그때 당시 매일 저녁 남편을 만나고 있었는데, 책 읽는 즐거움이 너무 커서 도저히 나가고 싶지 않았다. 사실 우리 가족에게는 나의 이런 특이함은 꽤 익숙한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방학 때면 틀어박혀 며칠을 밥만 먹고 책만 들여다보는 나를 이해해주었다.      


결국 나는 잠수 타기를 감행했다. 남편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모두 받지 않고 이틀간 책만 읽은 것이다. 요즘 말로 정주행!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책만 읽는 이틀을 보냈다. 남편은 나의 잠수에 무척 당황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책이 너무 재미있었으니까! 일단 책 다 보고 남편에게 사죄할 생각이었다.


결국 너무 걱정된 남편은 집까지 찾아왔고, 책 보느라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분노로 시뻘게진 남편이었지만, 감히 화내지는 못했다. 연애 시절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절대 갑이었으므로. 그 사건 이후로 남편은 책과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나에게 화는 내지 못했지만, 책에게 모든 분노를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서재에 빼곡하게 꽂힌 수백 권의 책을 그는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13년 전의 일이지만, 가끔씩 생각하면 나의 철없음에 너털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에게 한없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언제이고 매력적인 장편을 발견하면 또다시 그런 짓을(?) 할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이므로 그 이후로는 웬만하면 정말 재밌는 장편은 손대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에게 인생 책을 만나는 순간이 다가오길 바란다. 책벌레 부인과 살아야 하는 숙명을 가진 그가 가끔 안쓰럽다.    


       

# 나는 김엄마!     


호두는 잠이 들 때 재잘재잘 잘도 떠드는데 오늘의 대화는 이렇다.   

   

“엄마, 나 아기 때 이름은 호두였어. 엄마 아기 때 이름은 뭐야?”

“음. 엄마는 아기 때 이름이 없어.”

“그래? 그럼 내가 지어줄게. 엄마는 엄마니까 김엄마!”


우리 호두의 성이 김인데, 자기 멋대로 내 원래 성을 지워버리고 김 씨까지 붙여 김엄마라 짓는 작명 센스에 적잖이 놀랐다.      


똥을 쌌을 때 호두는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이번에 내 똥은 뱀이야 지렁이야?”     


먹는 양이 어마어마한 호두라 가끔 어린이집 변기도 막힌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민망해지곤 하는데, 집에서도 가끔 어른 같이 큰 변을 볼 때가 있어 내가 큰 뱀 같다고 몇 번 놀렸는데, 그걸 기억하는 듯했다.      


“응, 엄마가 봤는데 완전 뱀이었어.”     


뒤돌아 제 똥을 확인하던 호두가 말한다.      


“와. 진짜 뱀이네?”


항상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호두의 입술을 바라보는 게 재밌다. 특히 잠들 때 엉뚱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그럴 때의 호두가 너무 귀여워서 머릿속에 저장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우리 호두 이렇게 귀여운데, 더 크면 얼마나 슬플래나. 그때는 호두와 더 깊은 이야기로 또 다른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까. 김엄마는 벌써 지금의 호두가 그립다.      



# 나의 귀염댕이     


살이 제법 쪄서 동글동글한 지호는 모습이 귀여워서 언제나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아이 귀여워라.’, ‘지호는 너무 귀여워.’ 지호를 볼 때마다 재채기하듯 나오는 내 말을 지호는 꼭꼭 가슴에 담아두는 것만 같다. 언젠가 주제 글쓰기로 ‘선생님이 24시간 내 하루를 보신다면 뭐라 하실까?’라는 숙제를 냈는데, 게임을 많이 해서 혼날 것 같다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호의 숙제 내용은 특별했다.      


‘선생님은 지호야 귀여워라고 하실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첫눈이라 불릴만한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보충 공부를 하던 지호가 눈을 맞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길래 선생님과 같이 나가보자고 하며 함께 나갔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강아지 같이 달리던 지호가 갑자기 멈추더니 혼잣말을 했다.      


“아, 아빠 택배 하시느라 어렵겠다.”     


순간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택배 일을 하시는 아버지가 눈길에 얼마나 힘이 드실까 생각하는 지호는 내가 생각하는 귀염댕이가 아니었다. 그 깊은 마음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깊게 느껴졌다. 언젠가 책에서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구절을 봤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유, 우리 지호. 어떻게 하면 우리 지호 같은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가슴이 찡해진 나는 지호를 보고 괜히 눈이 아려왔다. 이제 지호를 같은 교실에서 아들 같이 챙길  있는 시간도   남지 않았다.  헤어짐이 반복되는  직업 덕분에 12월이 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도 남은  주간 후회하지 않도록 지호의 가슴에 사랑을 꾹꾹 담아주어야겠다 생각한다. 지호가 2학년의 시절을 생각하면  따뜻해질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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